내꺼내/글싸기

나무 너무 좋아.

가랑비 2021. 1. 24. 12:31

  나도 가끔 눈물을 흘린다. 영화 보다가 나도 몰랐던 눈물샘을 발견하곤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뭔가, 영원함에 대한 것이나 기다림이나 사람의 순수함과 따듯함 등에 마음이 동하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쯤 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왜 그러는지 스스로도 의아해했다. 중학생을 지나면서는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지?'라고 넘기고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어린 나이에 혼란을 많이 겪고, 세상의 어지러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영원함이니 순수함이니 이런 것을 뭔가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영화로라도 그것을 접하게 되면 눈물이 왈칵 튀어나왔던 것 같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무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무의 매력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 같다. 푸름을 매번 반복하는 모습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모습도 멋지고 자체의 향도 본능적으로 이끌리게 되는 등 정말 멋진 부분이 많다. 나무도 자연의 일부라 생태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있기 마련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식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에 예외가 있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어울릴 줄도 안다. 서울에서만 지금까지 살아와서 내가 본 나무라고 해 봐야 몇 종류 되지도 않고, 대부분이 가로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가로수를 보며 불쌍함을 느끼곤 했다. '저 뿌리가 다른 곳에 있다면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해마다 또는, 항상 푸르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정말 멋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결국 이 시선도 내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 내 처지를 나무에 빗대어 보고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 비해 나는 푸르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밖에 안 보였었다. 

  그즈음 내가 수행평가로 썼던 시에도 나무와 사람을 빗대어 표현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무는 땅의 위아래로 자신을 조화롭게 펼치는 반면 사람은 자신을 땅 밑으로 내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비밀이 많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린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쉿! 비밀이야!" 하는 느낌의 비밀이라기보다, 말하고 싶은 데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겁이 너무 많았다. 눈 마주치기만 해도 내 속을 다 들키는 줄 알고 눈 마주치기도 어려워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말 다했다. 뭐 막상 그 속에 뭐 대단한 게 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무처럼 자기 할 일을 몰래라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써 내려가 보니 드는 생각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멈추고 나무를 동경하게 된 것 같아 보인다. 지금은 사람에 대한 기대도 하면서 나무도 동경하고 싶다. 당시에만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과 폭발과 무기력이었는데, 지금은 추측이더라도 설명해 낼 수 있다.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와 방법을 갖고 있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나쁜 게 아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게 아쉬운 것일 뿐이다. 그리고 나무는 나무대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여전히 내가 가지는 판타지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무는 내 옆에 있다.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에 대한 동경은 중학생 때쯤 올라가면서 자연히 잊혔었다. '아니 무슨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하면서 말이다. 꿈은 곧 직업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꿈이 직업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고, 내 제약을 다 버리고 나니 나는 그냥 다시 나무가 되고 싶어 졌다. 나무가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나. 나는 그냥 그렇게 보이는 나무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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