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개성과 모방

가랑비 2021. 1. 22. 12:31

  지금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많이 알아가고 있다. 또, 내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을 이끌어 내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은 뭔지 윤곽이 보이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도구를 채택하게 된다면 빠르게 습득하는 과정, 모방을 통해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계속해서 드는 느낌은 중심이 있어야 좋다는 점이다. 그 중심이 곧 개인의 것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수행평가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두 가지 기억이 있는데, 하나는 잉어 먹그림, 다른 하나는 동양화 호접도 중에 하나였다. 호접도를 그렸을 때가 모방의 적절한 예시다. 기분 좋았던 경험이었는데, 결과물이 전시회에 걸렸기 때문이었던 게 컸던 것 같다. 근데 거기서 끝이었다. 당시 내가 멍하게 지냈던 때였기도 하고 어리기도 했어서 그랬겠지만 더 진전되는 것은 없었다. 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내가 한 것이라곤 단지 가장 비슷하게 보이는 색을 만들어내고 가장 비슷하게 따라 그린 것 밖에 없었다.

  만약 그 나이에 예술 쪽은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말 대신, 오 뭔가 있는 것 같은데?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면 아마 나는 그 길을 좀 더 걸었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당시 이 그림에 대한 경험이 내게 기분이 좋았던 일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였던 것을 보면 아마 꽤 높은 가능성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길을 잃었을 것도 자명한 것에 가깝다. 그 그림을 통해 내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적당히 내재된 꼼꼼함 정도뿐이었기 때문이고 나는 뭘 그리고 싶어 하는 지도 아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지금은 뭘 그리고 싶은 지에 대한 내용이 잡혀있다. 이 말은 언젠가 그림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말과 동일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당시 내가 겪었던 경험의 과정을 조금 분석해 볼 수 있다. 나는 내재된 꼼꼼함이 그림을 통해 드러났을 뿐이다. 모방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접근하면 모방의 일부로 볼 수 있겠다. 모방도 강력한 방법이다. 배우고 학습하는 방법 공부의 강력한 방법이다. 사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책 공부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들이고, 다 하는데도 욕먹지 않는 이유가 책의 출처가 확실하게 알려져 있고 그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공식을 갖다 써놓고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거처럼 모방이 안 좋은 인식으로 자리 잡히는 건 1. 잘못된 것을 무분별하게 습득할 때 2. 베껴놓고 내가 했다고 할 가능성. 이 정도인 거 같은데,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 다져놓은 길을 가므로 더 그 앞길을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개성을 따라 하고 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건 이뤄질 수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나만이 내가 갈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외부에서 빌려올 수는 있겠지. 기술을 배워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인 것이다. 마음이 그러겠다고 하면 그런 거다.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지 말고 뭘 모르는 상태인지 살펴라. 뭐가 필요한 상태인지 살펴라. 호기심을 더 넓혀라. 질문을 던져라. 

 

  시작할 때는 아무런 게 없어도 상관없다. 단순히 그냥 끌려서 시작해도 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부딪혀가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건 아니고 저게 나은 것 같다는 기준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게 쌓이면 자연스럽게 확고한 상태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확고한 기준이 없으면 금방 끝나게 돼있다. 꾸준함은 마음으로 시작되는 것이고, 꾸준함의 끝에 결과들이 조금씩 맺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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