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상황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걸 좋아한다.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고 가는 도중에 내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누구든지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귀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빛을 꺼내지 못하는 이에게는 빛이 나올 수 있게 외부에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할 뿐일 것이다. 적어도, 자신만이라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내려고 관심 가져줘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생각도 지금은 어떤 사람에겐 이미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한 번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예전엔 장애인을 생각하면 불쌍하다고 여겼던 기억이 있다. 길에서 장애인 분들을 봤을 때, 무작정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한두 번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어봤을 때에서야 그런 도움은 필요한 도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창 유명인사가 된 장애인분이 나와서 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길, 장애인도 저렇게 하는 데 나도 더 열심히 해보자. 근데 이 생각은 장애인도 그냥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지금은 문제가 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사람은 태어나서, 결국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할 뿐이다. 나라고 특별하게 다른 상황이라고 보고 있던 것이 착각이었다는 생각이다. 내 평소 사고방식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후천적으로 그분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됐고,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람으로 그분들만의 이름으로 불려야 함을 알게 됐다. 물론, 장애인으로 사는 삶에서 차별받지 않게 필요한 것은 갖춰야 한다.
봉사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참 의문이 많았다. 봉사랍시고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봉사일 수 없다는 것을 어디서 주워듣고, 굉장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봉사활동이랍시고 했던 활동들은 실제 도움이 됐긴 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하는 것이 찝찝했다. 연탄 나르기, 도시락 배달, 어르신 말벗되어드리기 등 생각보다 다양하게 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따로 있다. 처음으로 정기적으로 가게 됐었던 시각장애인 분들 산책 도우미였다. 산책을 도와드리는 방법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나는 정말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산책을 도와드리면서 오히려 나는 내가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배우러 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배우는데 봉사활동시간을 준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남을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 없는 것 같다. 나조차도 나를 돕지 못하는 데 이것만큼 안타까운 게 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굶지 않을 정도의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상대방에게 부담 주지 않을 정도의 의식주가 있었고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항상 생각이 도달하는 곳에는 내 삶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길목에 있었다. 당장의 더 나은 의식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바로 내면이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뭘까? 불쌍하게 보는 마음이 들어서 좋은 게 뭐지? 행동으로 연결이 되어서 누군가가 도움을 받는다면 고마운 순간이 생길 수 있겠다. 근데 일회성이라는 느낌은 나에게 호감으로 남지 못했다.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생각하게 됐던 계기였던 것 같다.
상대방을 보는 것에 있어서 내 입장으로만 판단해 불쌍함을 생각하는 것이 큰 결례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후로 더 발전돼서 먼저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는 내가 도움이 필요했는데 나조차도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내가 필요한 도움을 내가 직접 찾아 해결해주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