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삶을 다채롭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 또한 이전에 비할 수 없이 확장한다. 평소 친구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의 흐름에서도 맥락은 굉장히 중요하다. 인생이나 사회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맥락은 더없이 중요하다. 현대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수록 지금 사회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이해하기 수월해진다.
사람들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역사를 나열해 볼 때 결과적으로 사회는 항상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거대한 흐름에 탑승하여 마음 편하게 발전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겠다. 개인의 탓이나 특정 세대의 탓으로 뭉뚱그려서 발전을 방해하려는 관점은 언제나 '진짜'에 의해 제거되어 왔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해 일반적으로 비관적인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 제일 직접적인 이유라 하면 매일 주변에서 문제점만 나열하고 노출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숨기라는 것이 아니다.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매몰되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마치 개인의 탓이나 특정 세대의 탓인 것처럼 말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정체성을 빼앗기는 경험과 배신을 겪고, 분단을 겪으며 동족상잔을 또 겪고 독립운동 전쟁유공자 등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 잔인한 독재를 겪으며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폭력에 휩싸이고 보상이라고는 받는 게 일절 없는, 경제위기를 겪을 때 아나바다 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던 일반 직장인들의 힘이 있었기에 유지된 사회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다. 이런 사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내 밥그릇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버텼다. 각 시대에 요구된 희생정신에 응한 무수히 많은 개인의 희생으로 이 나라가 버텨왔다. 이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여러 단체, 학교, 각 가정에서 견뎌낸 수많은 어려움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것은 기억되어야 할 것은 기억되어야 한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라면 말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잊는다는 것의 다른 말은 그만큼 살기 좋아졌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다. 문제를 문제 삼으며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힘을 사회가 더 나아지는 데 쏟을 수 있도록 한다면 더 좋겠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단체이자 개인이다. 개개인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풍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 특히 이런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겪을 수많은 폭풍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 폭풍에 휘말리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이런 폭풍들을 외부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풍들만큼은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곳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떠한 맥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