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숙제

가랑비 2023. 11. 30. 10:19

  지금껏 내가 해낸 일은 재미와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일 뿐이다. 올해 다시 학업을 도전하면서 해야할 일을 미리 끝내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이게 참 어렵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는 꽤나 심각하다. 아예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잊어버리고 할 생각 조차 없어지고 마감이 닥쳐도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또 겪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이 발생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개선점으로만 볼 수 있게 됐다. 어쩌면 리셋된 상태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고질적이던 문제를 해소한 셈이니 나름 기쁜 일이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나타나는 현상은 해야할 일을 생각만 하고 건드리는 것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맹수에게 데여본 경험이 생겨서 다시는 깝치지 않는 상태에 빠진 동물이 된 기분이랑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 '학습'이 잘못되어 버린 것에는 당연한 얘기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숙제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다. 내게 숙제라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놓여있는 수준이었다. 이 문제점을 고치지 못하고 지금껏 버텨 온 게 대단하기도 하면서 웃기다.

  뭘 도전하든 처음엔 괜찮다. 숙제가 없으니까. 숙제가 생기는 시점부터, 나는 도망가기 바쁘다. 도피처는 웹툰이 주를 차지한다. 최근 몇년은 쇼츠도 큰 몫을 차지한다. 릴스는 더 심해서 앱을 지웠더니 다행히 지금은 릴스까지 손대지는 않는다. 결국 처음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귀찮아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여기에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받아들였다. 

 

  내가 지금 원하는 나는 해야할 일을 바로 시작해서 미리 끝내놓는 것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것만 내가 장착해낼 수 있다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겠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쉽지 않는 작업이지만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에 놓인 것과 다름 없다. 귀찮아서 재미 없어서 안 해버릇 하다가 닥쳐서 하려니 너무 어렵고 막막하고 그러니 좌절하던 습관에 절여져 있다. 이러한 것을 반대로 바꾸는 작업은 쉽게 되지 않고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다른 작업들을 통해 개선 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여기고 총동원해서 집중하면 여기서도 재미와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믿어본다. 내 인생이 꼬인 모든 것의 시초는 숙제를 하기 싫어했던 것에 있다고 여기게 되는 시점이다. 내면에서 이에 대한 필요성이 굉장히 명료해지고 커지고 있다.

 

  개선 가능성을 보고 있는 부분을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그동안 맹수로 여겨왔던 것은 '숙제'이다. 대신 나는 건드릴 영역을 해야할 일을 미리 끝내는 것이라는 새로운 시작점으로 접근해서 맹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자 한다. 물론 진전이 생겨서 나의 레벨이 높아진다면 맹수와도 싸워 이길 힘을 얻게 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제껏 어리숙한 상태에 놓인 욕구에 발목 잡혀있던 과거를 인식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명시하고 접근하면 답이 수월하게 나타난다. 하나의 가설이며 도전해보고 싶은 가설이다. 숙제를 해내는 것이 나의 숙제다. 그 숙제를 내가 귀찮아하고 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것에서 내가 재밌고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꿔서 풀어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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