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도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해봤을 때, 내가 겪어 본 두려움을 설명할 게 뻔하다. 그래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 좀 상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이번 아침은 일어났지만 '아침걷기'를 가진 않았다. 입승단 시험이 있는 날인데 워낙 피로하다고 느껴 더 쉬다가 넉넉히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이틀째 못해서 걱정이다. 다음에는 시험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아침걷기를 포기하진 말아야겠다.
어느새부터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고 책을 눈 앞에 둬도 제쳐두고 금새 다른 걸 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려고 책을 꺼내려고 손을 내밀 때 멈칫한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미는 손을 멈추게 한다. 그것이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왜, 어디서 나타나서 날 이렇게 괴롭히나? 다름 아니라 좌절이었다. 반복되는 좌절은 두려움이 나타나 가까이 가지 말라고 기를 쓰고 막는다. 달리 말하면 두려움이라는 친구는 나를 지키려고 하는 셈이다. 너 거기 가면 다쳐, 근데 왜 또 가려고 해... 하는 말이다.
그런데 공부가 실질적으로 상해를 입히나? 이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자세한 것은 다음에 '호기심'으로 다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작업이다. 추측해보자면, 좌절은 상당한 타격이 있는 스트레스일 수 있다. 이게 실질적으로 뇌에 데미지를 입히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두려움이 나타나 나를 말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좌절이 반복되면 두려움이 나타나 더는 그렇게 하지말라고 말린다. 그러면 나는 어쩌다가 그렇게 반복되는 좌절을 경험하게 됐나? 대학에 들어오면서 심화됐다. 학기가 시작할 때는 결심한다. 인스턴트 결심이다. 그리고 욕심도 생겨서 일을 벌린다. 무책임한 욕심이다. 공부는 해야하니 하고 결심했다. 애써 부정해왔지만,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게 멋져보이고, 스펙 쌓는데 도움이 되겠거니 하며 일을 벌린 것이다. 학기 끝에는 중구난방 어질어질한 결과 뿐이다.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양해만 구하는 식으로 수습하기 급급했다. 나에게는 무언가 방해장치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은 좌절이 반복되어 나타났고 좌절이 반복된 이유에는 나의 과거부터 만들어져온 학습능력의 부재로 비롯된 것이다. 이 또한 내가 만든 가설이었지만 현재 해결되어 실질적으로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졌기 때 문에 스쳐지나가는 짧은 생각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그리 믿었고 그리 해결했고 원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에 분명히 귀찮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더 큰 것이 있었다. 믿음의 부재, 실질적인 학습능력의 부재 등이었다. 이미 시간은 흘러 학년이 올라갔지만 배운 것이 없었다. 실제로 수업에 참여만 했지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넘어갔고, 복습은 커녕 문제풀이조차 하지 않았다. 제품설명서를 읽지 않고 전자기기를 쓰는 것과 같았다. 혼자 착각하고 넘어가고, 제일 심각한 것은 그러고 잊어버렸다.
그러다보니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게 됐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여겼다. 다른 일을 하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교육과 관련된 일들을 하게 됐으며 공동체를 꾸리는 작업을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성장과 성숙을 이뤘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공부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겪고 있던 문제가 고질적으로 변질되기 직전에 스스로 해결해 낸 셈이고, 이에 대해 스스로 큰 만족감을 느끼기에 자존감이 잘 정착됐다. 그 덕에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었고, 공부에도 적용 가능한 학습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아주 작은 성공을 경험했고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계절학기로 수업 하나를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었다. 믿음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지금도 해나가는 중이다.
주변에 방해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이또한 내가 그리 여기니 실제로 방해가 됐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그렇게 여기니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의 영향이 상상을 초월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주의하려고 한다.
두려움을 파고 들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나올 때까지 탐색을 해보고 나니 두려움은 사라져 있었다. 두려움은 그런 것이다. 부모의 과잉보호 같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설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은 억압이 아니라 호기심에 있다. 이는 다음에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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