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프/아침걷기

아침걷기77 암기

가랑비 2023. 9. 11. 16:12

  암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장금을 정주행 하게 됐는데, 의녀가 되기 위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서 일단 암기 먼저를 강요(?) 당한다. 그런 장금이는 그 과정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고, 착한데 실력 없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 올해 수험생인 아이에게 친구의 부탁을 받아서 해준 조언으로 내 입으로 '암기'라고 했다. 이번에도 나는 말을 꺼내며 깨달음을 얻었다. 암기가 중요함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기 싫다, 효율이 떨어진다, 시간 지나면 다 까먹어서 무의미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며 극구 사양했다. 어쩌면 나는 공부에 있어서 하나도 변함이 없었던 것이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갇혀있는 사람이었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다. 참 아직도 어리구나 싶다. 이를 깨뜨리기 위해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주는 시도를 할 것이고, 좋은 결과를 위해 암기를 할 것이다. 

  가족이 나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피곤한 모습이어서 같이 가자고 못 하고 혼자 다녀왔다. 호랑이를 이번에는 스치듯 보고 갔다.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이러니 공부가 될 리가 있나. 나는 결국 여전했던 것이다. 고치고 싶어 했던 것들이 아직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느낀 시점은 작았지만, 지금 다시 상기시키는 과정에서 꽤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물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도 지난번에 봤던 나무 울타리에 자란 버섯들이 더 자란 것을 봤다. 나름 보기가 예뻐서 개인적으로는 더 오래 있어도 좋겠다 싶다. 이번 본 물에는 물줄기에 흐름이 2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기가 참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호흡을 충분히 해주고, 등운동을 하러 갔다. 등운동하는 게 익숙해졌는가 하면 안 잡히고, 안 익숙해졌는가 하면 또 너무 자극이 줄었다. 내일은 한 번 무게를 한 단계 올려서 해볼까 싶다. 

 

  나는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을 때 쯤에는 이미 겉보기만 멀쩡했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었다. 눈과 귀가 멀어버린 상황에서 내 할 말만 할 줄 아는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가 날 이끌어 줄 기대조차 버리고 나니,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뚫린 게 말하기라 말을 하며 나를 만들어 나갔던 것 같다. 말하는 것도 못할 시기에는 정말 망상으로 세월을 보내기만 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가끔 한 번씩 꿈틀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오랜 기간 날 괴롭힌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였다. 이는 세상을 대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쳐서 나를 이지경에 몰아넣었다. 그 암기, 하라면 할 수 있었을 텐데 기어코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해보겠다. 이제는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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