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딱 지루함을 느끼려던 차에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난리다. 나는 안전하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지만, 다른 곳에 피해가 없으면 좋겠다. 어제 입추 날이 되니까 눈에 띄게 시원해진 것이 신기했다. 그래도 햇빛이 쨍쨍해서 습한 곳에서는 엄청 더웠다. 비바람이 불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두툼하게 입고 나갔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지루하기 전에 변화가 나타나는 날씨에 적응하려면 빠른 변화에도 금방 적응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겠구나 싶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금세 질려하는 사람들이 마냥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분명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성향일 것이다. 빠른 변화에는 결국 빠른 적응이 살 길일 것이다.
깜박 누워서 잠들어버렸다. 불을 환하게 다 켜놓은 채로 잠들어버렸는데 요새 쉬어가줘야 하는 타이밍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잠에 들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빨개져있었다. 그렇게 잠에 들어 못 깬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다시 불 다 끄고 더 누워서 잠에 들었다. 늦게나마 나와 걸었다. 비바람이 부는데 지난번에 그냥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나갔다가. 감기 걸리겠다 싶을 정도로 쌀쌀했던 적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서 두툼한 겉옷을 챙겨 나갔다. 나가서 걷는데 바로 어제 아침만 해도 선선하고 화창한 하늘을 보고 있었고 동시에 약간의 권태마저 느꼈던 것 같았다. 그게 무색하게 같은 길임에도 의심이 될 정도로 다른 환경 같았고 동시에 지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든 생각은 꽤 재밌었다. 사계절, 금세 질려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 빠른 변화와 빠른 적응의 필요성 등에 대한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두께가 꽤 되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태풍이 지나간 건 맞는구나 싶었다. 아무리 태풍이 지나가도 내가 직접 체감하지 못하면 별 생각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일반인이라 이런 증거 같은 것이 있어야 그렇구나 한다. 호랑이(석상)를 보니 색이 더 어둑해져 있었고, 턱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데, 호랑이가 침을 흘리는 것이 연상됐다. 그리고 좀 보다 보니 지난번에 스쿠버 가서 관광으로 동굴에 가서 종유석을 봤던 게 연상이 됐다. 나도 참, 이런 것을 보고 이렇게 연상하는 것도 신기하다 싶었다. 가는 길에 재밌는 것들이 많이 떠올라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적어둬야겠다 싶어서 메모에 키워드들을 나열했다.
물을 보러 가서는 딱 내가 좋아하는 위치만 바람이 워낙 세서 오래 있지 못했다. 지난번에 봤던 멋진 깃을 가진 발이 노란 새를 봤고 영상도 남겼다. 하나는 저 멀리서 목을 길게 빼서 물고기를 먹으려는 재빠른 목놀림을 하는 것도 구경했다. 옆에 이전에는 물 떨어지던 곳에 거의 폭포가 만들어져 있었다. 바람이 워낙 많이 불어서 버드나무가 걱정돼서 봤는데, 별 탈 없이 서 있었다. 든든했다. 이번에도 호흡하는 것은 스킵했다. 돌아가서 매미의 느릿하면서도 정교한 비행을 봤다. 바로 뒤에 참새의 비행도 봤다. 두 가지 비행을 연달아 보니 비교하기 수월했고 특색이 다르구나 느꼈다. 마무리로 등운동을 깔짝거려 줬는데, 슬슬 무게를 올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도전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을 가진 나라다. 또한 역사상 지리적으로도 변화를 많이 겪는 곳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되고 난 이후에도 겪기 힘든 일들을 수많은 것들을 겪고도 견뎌내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와중에 살아내고 있음에 감탄하고 격려해주고 싶다. 뜬금없게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조금만 더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점을 찾아내는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면 세상은 실수로라도 설탕을 더 붓게 되어 조금 더 달콤해진 곳이 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느라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쉼을 갖고, 마지막엔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에 적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