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할 때 알람 없이 눈을 뜨는 것은 꽤 기분이 좋다. 일어나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버려 둔다. 그리고 최근 마루는 강쥐라는 웹툰을 접하게 됐다. 마루라는 캐릭터로,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말썽을 피우지만, 귀엽고,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우리라는 언니의 외로움도 자연스럽게 충족시켜주기도 하는 등의 신비로운 생명체가 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어른'스러워지려고 했던 것은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를 줬다.
걸으러 나가는데 폰이 배터리가 없길래 충전기를 꽂아뒀다. 그러다가 해가 더 뜨기 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후딱 나왔다. 눈이 조금 흐린 느낌이었긴 한데, 하늘이 맑고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와 있는 것을 보며 눈이 풀어졌다. 호랑이(석상)에게 가서야 폰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김에 폰 없이 걸어보겠구나 하며 신났다. 오늘은 무난히 지나간 아침걷기였다. 유독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왔는데, 점점 버드나무가 존재감이 커지고 있구나 느꼈다. 햇살을 끼고 있는 버드나무는 어떨 땐 꽃보다 시선을 끈다. 오늘은 왠지 금방 들어가고 싶었던 모양인지 눈 감고 호흡하기도 안 하고 돌아가서 등 운동을 살짝 강도를 높여서 했다.
결국 아이를 '건강'하게 길러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을 알고,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대상을 나로 다시 수정해 적용 중에 있다. 그런 중에 투정 부린다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마루를 보면서, 어린아이의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는데 쓰이는 방법으로 투정 부리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어린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고, 성장하면서 그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면 될 뿐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 욕심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아이는 아이에 맞게, 그것이 사회적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맞춰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경험인 것 같다. 내가 그 덕을 본 셈이니, 나 또한 내가 마주하게 될 어린이들을 그렇게 충분한 여유로 대할 수 있길 바란다. 할 말은 많지만, 이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줄여본다.
최근 청소를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압박으로 다가오는지 실행에 바로 옮겨지지 않는다. 특단의 조치로 재밌게 청소하기를 찾아내고자 한다. 투정 부려도 좋지만, 청소하라고 하는 사람은 딱히 없다. 결국 혼자 투정 부리는 꼴이니 의미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청소의 매력을 찾는데 집중해보고자 한다. 설거지는 잘 적응이 됐는데, 한 번 설거지의 원리를 적용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