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혼자 의도치 않게 부쩍 자라 자타의 시선이 가게 되는 것이 있다. 수염에다가, 남자인데 길게 자란 머리카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성장의 한계가 궁금해지는 코털이다. 코털도 좀 눈썹처럼 보다 짧은 길이에서 멈췄으면 좋겠는데, 왜일까 아주 천천히지만 코 바깥으로 나올 정도로 길게 자라는 거 같다. 뽑고 있긴 한데 아프고 간지러워서 재채기 나오고 그런다. 뽑는 건 위험하다고 하니 다른 방법으로 바꿔야겠다. 어린 시절부터 수염이 나는 게 멋지다고 생각해서 얼른 수염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내 턱 부근에서 혼자 길게 자란 털 하나를 보며 뽑았는데, 그랬던 내가 지금은 거의 덥수룩 난다. 수염도 굳이 따져보자면 '머리'카락이다. 잘 관리해준다면 다양한 연출을 해줄 수 있는 효과가 있어서 좋다. 무작정 지저분하다고 취급하는 것도 좀 별로다. 눈썹 미용 다듬으면 인상이 달라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 지금 눈썹도 마음에 들지만, 깔끔한 인상도 좋을 것 같아서 눈썹도 관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긴 하다. 아직 크게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렇지 언젠가 또 해볼 의향은 있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두발규정이 있다는 말에 미리 반삭하고 들어갔다. 5,000원 주고 동네 미용실에서 반삭한 기억이 난다. 그 상태에서 얼마 안 있고 찍은 사진으로 학생증을 만들었었는데 그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고2 돼서 신입들 빡빡이 머리 좀 볼까 했더니 두발규정이 풀려서 배 아파했던 기억도 있다. 매번 엄마가 머리를 잘라 주시곤 했었다. 점점 실력이 좋아지셔서 머리 깎아주시는 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관리할 생각도 없었어서 좀 이상하더라도 "아 엄마~! 여기 이상해요 다시 잘라주세요."하고 다 잘라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갔다. 머리에 신경 쓰는 것을 생각해보니 중학생 때 남잔데 머리를 1시간 동안 만지고 왔던 건데 어떤 애가 헝클어서 속상해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기억력이 안 좋다고 했던 내가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면 나로서는 얼마나 충격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머리 깎을 이유가 없어져서 한참을 가만히 두곤 했다. 자연스럽게 단발이 되고 '오 좀 잘라야겠는 걸' 할 때 깎았다. 연상되는 기억이 고등학생 때 학원 원장 선생님이 머리를 1년에 한 번 깎는 사람이었다. 수능 때문이었는데, 제자들의 수능을 기원하는 의미였나. 수능 후에 머리를 깎는다고 하더라. 신박하고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머리 깎는 필요성을 못 느낀 것도 있었는데 '한 번 그냥 둬볼까' 하고 진짜 내버려 두었다가 단발을 넘어서 장발이 되는 시점이 있었다. 내가 봐도 신기해 하긴 했는데,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진짜 그냥 별 느낌 없이 내버려 두었다.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머리 감는 게 귀찮다 정도였고, 나중에는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하지 않으면 머리카락의 상태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길어질수록 긴 머리의 여자애들이 왜 아침 준비시간에 1시간이나 걸리는지 알게 됐다.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하고 그제야 깨닫게 됐다. 수영을 다닐 때 샤워장에서 놀란 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는데, 위아래를 훑고 나서야 안심하는 메시지를 볼 때면 너무 웃겨서 속으로 엄청 큭큭대기도 했다. 사실 적당히 길러보고 자를 생각이었는데 애매하게 있던 찰나 누가 머리카락 기부하는 게 있다고 했던 말을 들었다. '솔깃한데?' 하고 지금까지 기른 거 아깝기도 하고 내 머리카락 안 자를 명분도 생기고 했던 게 계기가 됐다. 그렇게 지내다가 머리를 묶고 다니기도 하고 땋음 당하기도 해 보고 나름 재밌었다. 거기에 수염까지 기를 때면 펜션 사장, 예술가 그리고 음악가 별별 소리 다 듣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또 머리가 정말 길었다고 생각돼서 잘라서 보냈다. 자르긴 했는데, 보내는 게 귀찮다고 집에 두고 꽤 긴 시간을 잊었던 거 같다. 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보냈다. 메일로 기부증서도 보내주시더라. 그게 되게 뿌듯했다. 굳이 투자를 했다면 머리카락 관리하는 데 쓴 시간, 샴푸와 트리트먼트 정도였다. 그 덕에 그 가치 있다는 기부도 할 수 있게 됐다. 난 단순히 돈을 아낄 생각에 좀 더 신났을 뿐이었다.
가끔 여군이 머리카락 기부했다든지, 남공무원이 머리카락 기부하려고 기른다 등의 기사를 보면 보자마자 든 생각은 별 게 다 기사네 했는데 한 편으로는 사회가 얼마나 답답한 분위기에 있는지 바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군인의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공무원은 머리카락 기른다고 업무에 방해가 되나? 단정함의 기준이 왜 일정 패션에 국한되어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나 또한 별별 소리 듣긴 했다. 길러보시면 알겠지만, 취준 할 때 면접 때도 그러고 갈 거냐는 소리는 한 번쯤 꼭 들을 거다. 머리 기르고 수염 기르고 그래도 옷만 깔쌈하게 입어주면 한 소리는 좀 줄게 돼있는 것 같다. 나한테는 내 몸의 일부가 더 소중한데 말이다.
역사적으로 배냇머리부터 길러왔던 문화도 있었다는 점을 한 번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깔끔함, 단정함 등은 주관적인 건데 왜 아직도 면접장에 '양복'을 입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단정한' 한복을 입고 가고 싶다. 최근 수염을 콧수염만 남기고 밀어봤는데, 굉장히 재밌다. 평소 내가 수염이 있는 상태로 자주 다녔는데, 위에 수염이 남아있다 보니 생각보다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특별히 행동하지 않았다. 그냥 털이 알아서 자란 것뿐이다. 근데 그걸 그렇게 신기하게 보는 게 난 너무 신기한 경험이 됐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