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한 달 간 뻗은 번개

가랑비 2021. 1. 31. 12:31

  산란 시기가 된 연어가 된 마냥 근원을 찾아서 보이지 않는 몸부림을 쳤다. 나도 알지 못하는 새에 몸부림을 쳐왔던 것이다.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물꼬를 트자 모든 제약을 부숴버리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내게는 힘이 있어 펄떡이고 있던 것이다. 다만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근원에 닿았다고 생각이 들만큼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내 안에서 일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 되어있다는 듯 급격하게 뻗어나갔다. 번개가 치는 모양이 유사하지만 같을 수 없고 모두 다르다. 나는 그런 번개 중에 하나가 된 것처럼 뻗어나갔다. 그렇게 또 뻗어나가 나중에는 나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스터디를 시작하게 됐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스터디를 시도했지만 내가 버티지 못하고 끝나버린 스터디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 이상 스터디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스터디를 다시 하게 된 것은 일종의 희망이었다. 돌파구를 찾아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마침 먼저 제안을 해줘서 덥석 물은 것이다. 근데 여기서 내가 돌파구로 적용한 부분은 다름이 아니라 수다였다. 나는 일상에서 얻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 일상을 가장한 내 진지한 고민들이 숨어있긴 하다. 그렇다 난 흔히 '진지'하다고 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새로 알게 된 것은 이야기를 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그렇게 나도 제안을 하나 했다. 수다 스터디 수다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수스수가 나왔다. 이것은 나를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니 공부를 오늘 하고 내일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효과를 가져다줬다. 다름이 아니라, 공부에 안 좋은 감정이 묻어있던 것이다. 정말 단순히 접근했다. 내가 공부를 할 때 힘든 이유는 재미없어서가 아니었다.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수다를 스터디 앞뒤로 붙여서, 기분 좋게 시작해서 스터디를 하고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아직 여전히 '공부'를 하면서 '딴생각'이 많이 난다. 하지만 그 딴생각 또한 '공부'다. 나는 내 인생에 관심이 많은 것뿐이었다. 내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절대 딴짓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그 고민의 답을 찾아 해결해 나가고 있었고, 최근 나는 돌파구를,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보이는 것을 찾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전부, 그놈의 '딴생각'이라고 취급했던 것들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그 딴생각으로 치부되던 것들을 나는 '공부'로 승격시켜줬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연구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그동안 무너져있던 내 자존감이 순식간에 재건됐다.

  글을 쓰니 생각정리가 잘 되어, 문장을 내가 한 번 만들어 본 것은 머릿속에서만 굴린 것보다 더 기억이 잘 남을 수밖에 없고, 글로 적고 나니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됐다. 기억도 오래 남는데, 또 볼 수 있으니 샘이 터지기 시작했다. 막혀있던 댐 뒤에 넘치는 수위가 흔들거렸던 것이다. 댐을 부숴버리니 살아나기 시작했다. 성장하기 시작했다. 눈 맞춤이 두렵지 않다. 목소리에 힘을 느낀다. 자신감이 묻어 나오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작동하는 원리까진 아니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뭘 원하는지 알게 되니 다음 할 일이 보인다. 그 일을 하게 된다. 글을 더 쓰고, 책을 읽게 되고, 달리기를 더 하게 되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공부를 조금은 더 하게 된다. 

 

  터진 시점에서 여러 개의 갈래로 갈라져 뻗어나가는 빛 같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던 것처럼 그러나 주어진 만큼만 뻗어 나가는 나였다. 그렇게 뻗쳐나간 나는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이제 진짜 줄기를 밀어낼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니 안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이 더 좋다. 돌아갈 일 없다. 좋은 경험 잘 배웠습니다. 앞으로 어지러울 때면 이 순간을 기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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