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학문적 지식
학문적 지식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들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그 은폐된 인식대상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_p33
이것이 신학문, 흔히 과학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근원이 되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라고 전제하고 시작하는 게 흥미롭다. 다만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지점이다. 한의학이 분명 가지고 있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받는 이유도, 신학문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교조적 특징을 띄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이 공헌하는 바가 대단히 큰 것은 분명하지만 마치 이를 성경인양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장벽을 세우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아마 이건 허준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그 책에 들인 정성을 생각해 볼 때, 허준이 자신의 위대함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고려할 때, 동의보감에 의문을 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한탄스러워하지 않을까.
맨 먼저 주목해야 할 특징은 학문적 지식이 공상적이고 창의적인 모험의 결과라는 점이다. 경이로움과 의문에서 시작된 대상에 대한 감정적 해답이다.
...
어느 분야에서든 이론은 소설처럼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것이 소설과 다른 점은 그 이야기의 대상이 그것을 수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다.
_p33, 34
정말 너무 흥미로운 표현들이 난무한다. 그동안 생각해 오던 흐름을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보게 되는데, 마치 표현하지 못하고 있던 답답함 속에서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예술작품 하나를 발견하게 된 느낌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격언은 "정보사회"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새겨들어야 할 요체를 담고 있다.
...
이 부분에서 오늘날 이미 만들어진 각종 학문적인 지식의 단편만을 백과사전처럼 머리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을 마치 자신의 지식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으로 인정하는 세태를 우려해야 한다.
_p35
결국 정보가 있더라도 써먹질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이게 내가 지금껏 집착에 가깝게 천착해오던 지점이다. 결국 그 정보가 내게 무슨 가치가 있는데?라고 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내가 못 받아들이겠으니까 거부하려는 심산으로 나왔던 시니컬한 말이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가치가 있음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결국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수집한다는 것으로 좁혀진다.
이 절은 지식이 창조물이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선진의 지식이 후진에게 입증되는 과정은 그것의 재창조라는 의미를 갖는다.
떡밥 회수가 진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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