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교육학의 재건

자연인과 학문

가랑비 2026. 3. 14. 11:17

1.1.2 학문공동체

자연인에게는 학문하는 삶과 학문하지 않는 삶이 있고, 그 가운데 전자의 것을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다. 그 가입과 탈퇴는 자유다.
_p29, 30

  학문의 세계에 대해 가입과 탈퇴가 자유라니, 뭔가 홀가분해지는 느낌이다. 특정 분야의 경우 진입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탈퇴가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사례를 듣게 되는데 이걸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공동체 자체에 대한 것은 제약 조건이 있겠지만, 해당 자연인이 학문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나 학문하지 않는 삶 자체를 두고 볼 때 보다 광범위하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학부생도 세상에 펼쳐진 수많은 논문들을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주어져 있지만 많이들 그 선택지를 고르지는 못하는 것이 떠오른다. 

학자라는 명분으로 대부분 학문 이외의 활동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실지로는 완전히 가짜다. 
...
학문하는 사람은 거짓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격조건은 참된 지식을 위해 끊임없이 힘쓰는 성실한 노력과 그 일 자체를 즐기는 태도다. 
_p30

  이 문단을 접하니 이전 챕터에서 다뤄졌던 대상세계와의 구분에 대한 보충이 된다. 학자의 위치를 명시하기 위한 작업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렇고 수많은 학자들이 영역의 구분 없이 수많은 학문 영역을 다뤘던 것이 연상이 된다. 이러한 작업은 어디까지나 학문의 세계 안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항상 보이는 대중서나 대중강연 같은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게 학문의 영역 안에서와 일상에서의 구분인지 아직 명확한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전문 영역에 대해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그 학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자신이 다룬 분과(?) 학문의 영역 외의 것에 대해서까지 떠들어 댄다면 그건 몰이해에 따른 오해를 전파하는 폐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삐끗하면 쉽게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지식은 집단의 지원을 받아 발전한다. 집단은 집단이되 학문을 위한 집단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오직 학문만을 위한 이 특수한 사회에 소속된 학자들은 공동의 목표, 그 나름의 조직, 내재율, 구성원의 자격심사, 수련의 방법적 기준이나 평가의 기준, 더 나아가서는 행동의 규범과 일정한 태도의 전환을 요구한다. 거기에는 구성원의 자유와 창의가 보장되며, 서로 경합하는 관념체제가 병존하면서 서로 간에 우열을 가르는 지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 인식체제는 거의 예외 없이 대중의 신념과 충돌하였다.
_p30

  학문공동체에 대한 정말 핵심적인 요약으로 보인다. 실천공동체 이론을 먼저 접하고 이 문단을 보니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학문이라는 영역에 관해 모여서 힘을 합쳐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참된 지식을 위해 끊임없이 힘쓰는 성실함과 그 자체를 즐기는 태도'로 전환하기를 요구받는다는 말이 된다. 이에 더하여 이 학문공동체가 확립해 나가는 영역은 대중의 신념과 충돌하게 되는 필연적 흐름이 존재함을 언급하는데,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일상 속에서도 밈 하나 모르면 그 자체에 대한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참된 지식을 위한 노력이 세월에 걸쳐 쌓여온 견고한 학문의 성벽은 일상과 이질적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용인하게 되는 것은 학문과 학문공동체가 가진 방식에 있다고 설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학문의 방식인 질문하고 규정하고 증명하는 방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강력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학문공동체도 또한 그 안에서 동료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학문의 방식이 적용되기 때문에 '상식, 이데올로기, 교조에 좌우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지식을 생산하는 사회적 연대와 결속을 유지'하고, 이로 인해 사회에서 학문공동체가 용인된다고 설명한다.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며, 우리 각자가 학문의 세계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 위계와는 상관이 없다 학문의 세계에 진입하려는 사람은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_p31

  학문의 세계에 진입할 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미가 되는 것 같다. 문제의식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가 나아가게 되는 길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의식, 방향은 어떻게,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소외 없이 연결되며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 작업 자체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 건강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에 의한 폭력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점차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인 것을 보아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느낀다.

앞으로 논의하게 될 교육은 그 수준의 차이 안에서 진행된다. ... 초입에 있는 사람의 경우조차도 일단 학문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같은 세계 안에 있다는 점에서 동문이다. 

  방향이 일치하기만 해도 동문으로 취급해 준다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방향이 일치된다는 것 자체가 핵심이고 어렵기 때문에 그래도 되겠다 싶다. 이어서 동문의 자격으로 몇 가지 태도를 조건을 든다. 1. 세속에서 물러나야 한다. 2. 인식대상을 얼마만큼의 불가사의, 불확실성, 가능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3. 사적이든 공적이든 기존의 인식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4. 진리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한다. 위의 조건들을 볼 때, 마치 한 형태의 종교적인 측면도 묻어 나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정말 이상적인 태도이며 이를 갖춘 사람이라면 참된 학자라는 데 이견을 가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