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것은 따라 하기 마련이다. 멋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결과물이다. 타인이 없이 멋이라는 게 있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일시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멋진 옷을 입고, 꾸미는 게 자기만족에 목적을 두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자기만족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이것은 흔히 생각하는 의식주와 같은 생존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결과물로써 생존에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헷갈리기도 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자신을 가꾸는 것에 심리적인 요인을 보면 돌보는 행위를 스스로에게 함으로써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갓난아이 때부터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으로 타인과 떼놓고 보기 어려운 행위가 된다.
재밌는 점은 그 멋이라 하는 게 바로 옆 사람과 비교해 봐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발전해 갈수록 심화된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뿐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조차 접해본 적 없는 것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시로, 문신만 놓고 봐도 정도의 차이가 크겠지만, 유무에 따라 인상의 차이가 확 달라지게 되는 게 있다. 멋으로 여기고 하는 이와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좀 더 나아가면, 흔히 알려진 이미지가 있다. 주먹으로 대화할 것만 같은 형광반바지와 클러치백에 금목걸이와 문신.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패션이다. 그러나 그들 사회 속에서는 그 패션에 도달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옷을 통해서도 추구하는 방향이 명료하게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히 가치관이라 불리는 것으로 인생관, 세계관 등에 있어서는 그 차이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최소한의 소통이라도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대체 이러한 가치관들은 어디서 보고 배우는 것일까? 우리는 느낄 수 없어도 분명히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수많은 판단과 그로 인해 내려진 결정과 선택들은 개인들을 구성해 나간다. 어떤 사람의 모습에서 좋고 안 좋고의 취향적 관점에서만이라도 그것은 분명해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내려지는 판단과 행동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에서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가 '멋'이다.
다음에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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