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와 같이, 아니 더 만족스럽게 선택하고 흘러나오는 행동이 이뤄진다. 어젯밤에 자고 싶은 시간에 핸드폰을 멀리 두고 눈을 감았다. 일어나는 게 운동의 결과물로 쉽지 않긴 하지만, 눈이 떠졌을 때 일어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한 다른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행동에 초점을 두기보다, 무언가를 하려고 드는 행동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자 했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기로 한다. 꾸물럭 대며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겨 갈아입고 나간다. 오늘은 읽고자 하는 책을 추가로 준비해 나갔다. 온전한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산책 나간 '김에' 도서관도 가고, 도서관 들른 '김에' 책도 읽고, 그런 '김에' 내가 들고 간 책도 읽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원하는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도서관에서는 석가모니 관련 책을 훑고, 글쓰기 관련 코너를 보니 논문 작성법에 관한 책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놀라면서 한 두 개 건드려봤다. 나왔더니 시간이 금방 가 있었다. 바로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재밌는 발견들이 생겼다.
어제 처음 시도하게 되었던 책 읽다가 걸으면서 읽는 것을 다시 해보았다. 책을 읽다가 더 안 읽히게 될 때, 자연스럽게 폰을 꺼내고, 폰을 꺼내니 다른 것을 시작하려 든다. 천만 다행히도 이번엔 퍼뜩 정신이 들어 어제처럼 '걸어보자!' 했다. 폰을 다시 집어넣고 책을 읽던 채로 일어나서 걸었다. 건물 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한 싸이클을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 효과가 좋다. 다시 읽어보자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10초도 안 지나서 또 안 읽히는 게 아닌가. 궁금해서 계속해서 반복해 보았고, 걷고 돌아오면 훨씬 많이 읽어 넘긴 상태가 되어있다. 내게 있어서 이는 아주 큰 경사이다. 조만간 엄습해 올 큰일을 기다리는 심정이 마음속 한편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 상황 속에서 나의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을 얻은 셈이다. 이대로 가보자.
자연스럽게 왜 잘 될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 지점이 내게 가장 재밌는 영역이다. 원하던 대로 책을 쭈욱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앉아 있지 않고 걸어 다닌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수차례 반복되어 나타났던 것을 근거로 들 수 있겠다. 여기서 가설 하나를 떠올려보았다. 이전에도 계속 언급해 왔던 몸을 움직이는 것의 일환으로, 몸을 움직여서 나타난 변화일 수도 있다. 몸을 움직여서 뇌를 더 활발하게 한다는 관점이 될 수도 있겠다. 아쉽게도 뇌과학에 아는 바가 많지 않아서 여기서 멈추게 되었다. 뇌과학을 더 공부해 보면 다른 지점을 볼 수 있겠다 기대해 본다. 이후에 계속해서 이 경험을 반복하면서 문득 든 다른 가설이 있었다. 관련 개념을 '비상탈출'로 명명(?)하겠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비상탈출은 일종의 생존 수단으로 등장한 것으로, 어린 시기에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시도할 수 있는 효율적이면서도 고도로 발달된 회피 방법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른 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특정 상황에서 받게 될 충격을 막기 위해 입력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비상탈출 정신적인 면으로만 작동되기 때문에 육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이 회피 방법이 수업을 듣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시도되면서, 잠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졸음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수업에서 내용이 부담이 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관심 밖의 것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특히 졸음이 유발될 것이다. 물론 밀폐된 공간에서 높은 기온 같은 상황 속에서도 더욱 그러하겠지만, 내용에 관심이 있다면 이를 뚫을 만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졸음이라는 것은 흔히 수업에서 배제될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이를 의식해서 조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의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상탈출의 경우 졸음과 유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엄연히 다르다. 특정 육체적인 행동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의식하기 어렵다. 심지어 감정적 연관도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감정적 표현이 욕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힌트가 된다는 개념을 깔고 있다.).
정리해 보면, 책이 더 안 읽히게 되는 것의 원인이 앉아서 공부하려는 행위를 할 때, 매번 비상탈출한 것이 내 안에 깊숙하게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비상탈출을 하게 만드는 상황을 파악하고, 우선은 그 상황 밖에서 책을 읽는 시도를 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현재 내 독서 역량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례로써 걸으면서 독서가 가능한 것이다. 책과 친해지고자 하는 내 마음은 점점 커지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시도하며 자리 잡게 만들 것이다. 비상탈출을 시도하게 되는 상황을 파악해 보고, 그 밖에서 행동을 훈련한 뒤에 무의식적 비상탈출을 감행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과거의 존재들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상탈출이라는 개념을 꺼내게 되면서 이 비상탈출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며 원치 않을 때 등장하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 불만이었다. 이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내게 있던 불안, 부정해 왔던 불안, 받아들이고, 보살피며, 달래주기로 한다. 그렇게 나와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나를 마주해 보자.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것이 기대된다. 이제는 무의식적인 비상탈출에서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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