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두려움

가랑비 2024. 5. 29. 11:11

  인생이 뻗어나가게 될 경우의 수는 두려움의 가짓수에 반비례한다.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일수록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많이 심어진다.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심었다는 점과 그 두려움으로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스라이팅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도 그러한 편에 속한다. 현재 나의 내면에 자리 잡힌 두려움을 파악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다면 그 두려움부터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이 마냥 단점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있는 쪽으로 가지 않음으로써 한정된 자원인 시간과 돈 등을 집중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지는 장점도 있다. 또한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돌파해 낸 사람의 길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지향점이나 목표가 같더라도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좀 더 성숙한 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두려움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분명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나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아가는 길의 생김새가 달라지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전에 파악하는 게 우선순위가 더 높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아 본다. 하나 확실한 것은 사람들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다만 변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범위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가족 외의 모든 사람이었다면, 현재는 내가 환심을 사고 싶은 사람 또는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칠 불특정 다수로 좁혀진 느낌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내 맘에 안 드는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싹 들어낼 것이다. 특히 내가 환심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서로 맞춰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 아니라면 억지로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칠 불특정 다수에 대한 것은 아직까지는 일정 부분 필요한 영역으로 보인다. 나의 인성을 한 단계 더 확장시키는 데 꽤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두려움으로 남지 않는 듯한 느낌이 크다. 자연히 사라지게 될 두려움인 셈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같은 것을 두고도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두려움은 맞이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반면 두렵다고 회피할수록 외면할수록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기에 두려움을 관리해야 한다. 이 시기에 방치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다루기 어려워질 수 있다. 두려움이 나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수준이 되어버린 상태에서는 두려움에게 쫓기는 모양새가 된다. 주체성이 있는 상태는 아니다. 나의 두려움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728x90

'내꺼내 > 글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복 신념  (0) 2024.12.29
나를 위한 행위  (0) 2024.12.11
심리학&철학  (0) 2024.05.27
사랑  (0) 2024.05.19
맥락  (0) 202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