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따기

반야심경 핥기

가랑비 2024. 5. 16. 10:39

  책은 읽고 싶고 시작하기는 어려울 때 가볍게 먼저 접해보기 위해 유튜브를 찾게 된다. 구독자가 느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유튜버 중 하나인 너진똑 채널에 올라와 있길래 봤다. 최근 들어서 내가 겪고 있는 재밌는 변화중 하나가 호기심이 생기면 그 즉시 한 줄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든 호기심은 '반야심경이 뭘까?'

 

https://youtu.be/-p-wip48Lcc?feature=shared

그림체도 귀엽고 목소리도 오래들어도 피로감이 적어서 북튜버로 탁월한 점이 많다. 물론 전달력이 좋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간단한 설명과 여러 가지 예시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이해도를 높이는 데 재능이 있다고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반야심경의 핵심 문장이 '오온이 공하다.'이며, 오온이 뭔지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단순하게 사람의 인식의 전반적인 과정이라고 보고, 공하다는 세상에 구체적으로 확정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빈칸이 곧 정답이라는 의미라고 이해했다. 

 

  이 내용이 지금 시점에서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위 영상에서 다룬 내용처럼 생각했던 것이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나 또한 '해골물도 내가 시원한 물이라고 여기고 마시면 되는 거 아니겠어? ㅋㅋ'라고 장난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해골물을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세균이나 그러한 물질이 담겨 있을 수도 있는 고인 물이라는 점을 간과해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줬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프레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줬다. 내가 이제껏 노력해 왔던 점 중에 하나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그 덕에 거기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고 만족감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겪은 가족과의 관계나 연애 경험 등을 통해 최근 새로 알게 된 내용이 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온 내가 갖게 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강력한 프레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깔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내 입장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손으로 다 셀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 맹점은 여기에 있었다. 실질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면, 내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행동을 한 것이 내가 그 행동을 안 좋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는 뭐든 괜찮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다 보니 분명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 피해가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악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단순히 성향 차이였을 것이다. 설령 악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범죄도 아니라면 과연 그것은 내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저 사람에 의해 씌움 '당한' 프레임으로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결국 관계는 파탄이다. 하지만 사물조차도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는데, 사람은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다양할까? 사람 변하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특정 조건이 갖춰진다면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변화를 품고 있는 '사람'을 내가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위험한 착각이다. 프레임을 씌운 것이 곧 착각에 빠졌다는 의미다.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를 안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신 내가 프레임을 씌웠다는 것을 재빨리 인식하고, 내가 어떠한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여 거기에서 벗어나 다시 상대방을 빈칸으로 대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 상대방을 다른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를 도전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 함께 다른 활동을 한다든지,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 다른 분위기에서 직접적인 소통의 시간을 마련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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