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프/아침걷기

아침걷기95 나3

가랑비 2023. 10. 1. 10:58

  아무리 머리로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해도 '습'과 '득'이 되지 않으면 매우 안타까운 시점이다. 그래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이게 과도기에 있다면 이 점을 감안하여 믿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일반적으로는 흔히 이런 것들을 기다려 줄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봤다. 바람이 꽤 불고 건조한 것을 느낀다. 호랑이가 춥진 않을까 걱정까지 한다. 짧은 시간에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금방 흘리고, 물을 보러 간다. 오늘은 꼭 열람실에 가야하겠기에 시간을 아낄 겸 따릉이를 데리고 갔다. 은행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길을 피하기 위해 따릉이에 업힌다. 다시 내려서 걷는다. 

  물을 보니 비슷한 물의 흐름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주가 같이 지금 이 순간만을 보면 알 수 있는 것과 6개월, 1년, 3년 등 길게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호흡을 해줬다. 일정이 없는 날엔 확실히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을 보니 아직은 나의 에너지가 더 성장이 필요해보인다. 돌아와서 등운동을 했다. 그립을 좀 넓게 잡고 가슴을 여는 것을 통해 자극을 다른 부위에 더 받고 자세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어깨에 부담이 있었던 것이 줄고 비교적 깔끔하게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2년의 긴 시간에 걸쳐 결과를 얻는 신호같다. 한 번 깨달음이라 느낀 것은 지워지지 않고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남는다. 그렇게 나의 의식에서는 벗어났어도 그 각인은 일종의 시스템이 되어 나의 '행'에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주는 과정이 재밌다. 내가 기억력은 좋진 않지만, 이 깨달음을 통해 각인된 것은 물리적으로 저장이 되어 이후에 겪는 사건이 연관성이 높을 수록 불러오기가 빠르게 이뤄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의도하여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것임을 발견했다. 

  늦어도 2년이면 나의 깨달음은 행에 도달한다는 경험적 믿음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의 목표인 '계획하고 살기'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원하는 것이 구체화되고, 이에 따라 좁혀짐과 동시에 확장된 목표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종의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한 번 얻은 깨달음을 기록하고, 잘 정리하여 계획하고 행하는 훈련을 한다면 2년이 걸릴 것을 어쩌면 한 달만에도 유사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에 이런 작업들에 도움이 되는 사고방식과 구체적인 행동 양식들을 많이 연습해서 마찰이 줄어든 상태가 됐다. 그러고 나니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데로 의도한 채로 흘려보낼 수 있겠다고 느꼈다. 특정한 제약 안에,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필요한 방식을 습득하고 행하니, 나는 또다시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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