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성장을 이야기한지는 벌써 2년이 넘었다. 분명히 변화가 있었고 그에 따른 성과가 있었다. 나에게는 혁신이었다. 무기력을 극복해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줬고, 실제로 내가 해내는 일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겪은 깨달음으로 나는 그동안 해왔던 것이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문제는 다름 아닌 역시 또 '나'에게 있었다. 소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업에서 암기와 앎이 뒷받침이 됐듯,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의 것도 똑같이 상대방의 표현에서 정의하듯 시작하는 것이 필요했음을 이제서야 더욱 느낀다. 그 정의를 인정하지 않으니 전개할 수 있는 '논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제도 약간 지난번처럼 반작용같이 나타나는 현상 때문인지 만족스럽지 못하게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시간을 써버리는 바람에 늦게 자버렸다. 이 부분이 내가 컨트롤이 가능한 영역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 덕에 여유 챙기기는 어려웠지만, 따릉이를 타서 편안한 속도를 유지하며 타니 비슷한 효과는 있었다.
호랑이를 보고, 따릉이를 타고 물을 보러갔다.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어둑한 정신과 눈을 조금이나마 맑게 했다. 바로 돌아가며 큰 산을 한 번 봐주고 등운동을 했다. 또 시작할 때 왼쪽 어깨가 말썽이었는데, 자세를 잘 잡으니 괜찮았다. 렛풀다운 방법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이동하며 든 아이디어를 메모했는데 중요한 무언가가 발견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수학 관련 수업을 들으며 어떤 연결고리가 딱 잡힌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최근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만나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나의 문제점을 끄집어내져서 거의 반강제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의 문제는 상대방을 위한다고 착각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상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으면 흘리거나, 가르치려 들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게 내 스트레스 대처 방식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나타난다. 정신이 무의식적으로 날아가서 붙잡을 수 없는 곳에 가버린다. 다행히 이 부분은 인지한지 꽤 돼서 조만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최근 연결고리가 됐던 중요한 건, 남아있는 문제로 인지하지 못했던 영역인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수용이라고 하기엔 찰떡이 아니다. 정의에 가까웠다. 수학 공부를 시작할 때, 조심해야할 점은 정의를 배우는 과정에서 '왜?'를 시전하면 골치 아파진다는 것이다. 정의는 그렇게 약속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정의를 기반으로 논리를 펼친다. 마찬가지로, 나의 사고로는 납득할 수 없더라도 상대방의 언어가 비논리적이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극도로 논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의가 다르며, 전개하는 논리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내가 펼쳐왔던 그림이 '논리'가 있었듯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에 걸맞는 정의를 내리며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린 정의를 파악하지못하면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펼치는 논리 또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그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의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효율적인 것은 자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