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 본성의 말을 하게 되어 평화를 향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여를 하게 됩니다.
납득이 되는 문장이다. 판단 같은 언어를 사용할 때 폭력에 기여한다고 했다. 또한 판단과 같은 언어는 사람의 연결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명료하지 못한 언어이다. 마셜 형님은 또한 [비폭력대화]에서 우리 사람의 내재된 특성인 본성을 평화를 추구하는 듯 굉장히 따뜻하게 표현한다. 이런 본성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는 셈이다. 대신해서 이런 본성에 함께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폭력이 아닌 평화에 기여한다.
판단, 평가, 비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의 이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 가진 한계가 명확히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사실 역사가 정말 깊다. 기원전 175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제정했다고 하는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쉽고 확실하고, 필요한 언어라는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아 물론 함무라비 왕이 아주 똑똑해서 이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만, '필요'가 없이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또 인간 세상이니까 말이다.
세상에서 다뤄지는 필요는 굉장히 복잡하다. 그러나 인간 내부에서의 필요는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천동설을 주장할 때와 지동설이 등장할 때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천동설을 주장할 때 정립된 이론은 복잡해서 어질어질할 정도로 행성이 왔다 갔다 해서 이름도 행성으로 짓지 않았나. 이에 반해 지동설을 통해 태양을 중심으로 복구하게 되었을 때 그 단순 명료함은 예술 그 자체였다. 이를 처음 맞닥뜨렸을 사람들의 충격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다.
연결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하는 길 중에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 [비폭력대화]에서 다뤄지는 언어들이다. 비폭력적이며 명료하다. 판단을 제거하여 관찰과 느낌에 초점을 둔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보지 못하고 헤맸던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며, 오히려 봐달라고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다. 알고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본인의 본성도 따뜻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습관을 바꾸게 되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본성의 말을 하게 되어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 계몽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게 된다. 내가 나의 언어를 바꾸는 것 자체만으로도 본인의 삶이 만족스러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인의 삶에서 만족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서 변화가 드러날 것이며, 언어로 전달될 것이고, 그 변화는 주변에 퍼지게 되어있다. 그게 모든 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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