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들 중 진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가 결국 멸종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으로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게 엘크라든지, 자루눈파리라든지 이런 사례는 많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인간에게도 같은 처지에 놓인 게 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정신적 측면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자연의 일부로 나고 죽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지만, 인간은 그것에 대해 분리된 인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존재 차원의 불안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꽤나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무언가 지금의 나로서는 옳고 그름의 사고 좋고 나쁨의 사고 밖에서 위치한 듯한 감각이 비중이 더 커지는 시점이어서 그런지, 대단한 충격이 아니라 단순한 사고의 확장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감각이 있다. 이 자체가 내게 색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다른 영상들을 보며 기괴하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뭐랄까. 이입이 없는 듯이 접하게 된다. 이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감정적 동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이게 뭔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이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최근 무언가 탁 하고 오는 느낌이 들었던 게 떠오른다. 목표와 나의 행동의 결을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그동안 나의 삶에서 무수히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했던 지점이었는데, 이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제 산책하는 도중에 처음 떠올리게 되었다. 그 길의 위에서 [싯다르타]를 살짝 보게 되었는데 이것도 무언가 영향이 있는 듯하다. 그가 가는 길에 대한 계기가 되는 내막에 대해 접했고,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 것 같다.
내가 걷고자 하는 길에 대해 새로운 감각을 느낀 것이다. 실존적 엘크 이론이 이론적인 측면으로 하나의 관점을 두어 세상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감정적 분리를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남의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내가 지금까지 체감한 것들은 모두 나의 몸을 포함하여 축적된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주창한 사람도 현대 사회에 대해 이런 몸의 비중을 갖지 못하는 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든다.
비관적으로 보면서도 그 속에서 좋은 의미를 찾으려 하는 따스함이 엿보인다. 이것은 마치 세상이 썩었지만, 그래도 살 길은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더 이상 나는 이런 것에 감동을 느끼지는 않는 듯하다. 더 이상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떻게 그런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나의 삶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이 이론도 그중 하나의 요소로 다가오는 듯하다. 관련 책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wcDARQ7emv4
'내꺼내 > 글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내가 진짜 아는 것은 무엇인가] (0) | 2026.03.30 |
|---|---|
| 싯다르타(1922) (0) | 2026.03.20 |
| CoP 혁명(2004) (0) | 2026.03.18 |
| 체공녀 강주룡 (0) | 2026.03.10 |
| 자식에게 주고 싶은 선물의 이름 (2) |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