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나서 세상의 전부가 부모이다. 여기서 출발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게 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점차 부모의 비중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잘 연결되어 있는지에 있지, 뭘 해주고 말고 가 아니다. 이는 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연결만 되어있다면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해 나가는 것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방향이며 마땅한 방향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먼저 살았기 때문에 일평생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가정한다면 한 세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기간 동안 자녀가 부모를 잃은 마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같이 따라가길 바라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길 내가 바란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이라 함은 자녀가 독립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작게는 자신의 가정에서 독립해 나가는 것이며, 크게는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까지도 범주에 넣을 수는 있겠다. 이미 진부해져 버릴 만큼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독립의 기준이 너무 빡세져서 부모의 역할이 끝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는 독립의 기준에 대한 오해가 낳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독립이라 함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같은 특정 상황에 따라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갓난아이는 자신의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밥을 먹여주어야 하고, 어린아이는 여전히 신체적인 연약함을 보호받아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로 보호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야 한다.
이러한 '필요'를 채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최소한의 역할이라 부르는 게 서로 오해가 없겠다. 최근 한국 사회의 많은 정신병리 현상들은 모두 기준이 너무 높아짐에 따라 생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 가족의 형태, 마을의 존재 등으로 형성되었던 사회 구조는 이미 사라지거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조(핵가족, 핵개인 등)의 등장으로 혼재된 상태에 놓여 있어 수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게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게 단순히 한국 사회에서만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인데,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인구 이동이나 경제 체제의 변화 등 사회적 경제적 요건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대응이 필요한데 누구 하나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하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낯선 환경에 놓인 어린아이처럼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제 각각의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상황인 셈이다. 대혼란의 시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적으로 터지고 있는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급급한데 내, 외부로 터지는 이슈들을 보면 난리도 아니다. 이런 어지러운 속에서 부모는 그동안 마을의 형태로 책임을 지고 있던 부분들을 한 가정 내에서 모두 맡게 되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녀를 키우기 위해 억 단위의 비용이 든다는 여러모로 말도 안 되는 수치가 환산이 된 것이다.
이 수치는 실질적으로 말도 안 되는데, 과도하게 높아진 기준치가 반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들 같은 지원 정책이 실질적으로 수혜를 받게 되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 세대를 거쳐가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극악 난이도의 사회 실험에 준하는 셈이다. 무지로 인해 자행해 왔던 정책들이 한두 가지도 아니다. 한 때 산아제한정책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도 정부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학교, 지자체, 기업 등 다방면의 영역에서 조명해야 할 이슈인 것은 분명하다.
부모도 부모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누구보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어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느냐 한다면, 기준을 낮추고 자녀의 진짜 필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을 위한 필요. 이런 세상 속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는 수밖에 없다. 돈이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환상이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면 빨리 깨달아야 한다. 또한 자녀 이전에 있어서 스스로도 무엇이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몸과 마음에서 억눌려 있던 필요를 들을 귀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녀의 필요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꺼내 > 글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왜요 왜요 왜? (0) | 2026.03.21 |
|---|---|
| 나의 필요 = 우선순위 (0) | 2026.03.19 |
| 시험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하여 (0) | 2026.03.15 |
| 회피가 아닌 보류 (0) | 2026.03.12 |
|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0) | 2026.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