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라는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이 보인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소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외의 것들에 있어서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회피에 절어 있었다. 이제서야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업들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억울함이 있다. 두려워서 그런 것도 맞지만,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으로써 꼭 돌파만이 답은 아니다. 재해석을 통해 두려움을 느끼는 경로를 바꿔 버리는 셈이다.
보류는 내 의지로 어떤 선택에 있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보류하는 것은 마치 사장이 결재를 하는 것과 같은 접근으로 여길 수 있다. 사장이 직원들의 제안서에 결재를 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을 느끼고 회피할 것이 있을까? 아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선택지들이 나의 결재를 받고자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그 제안서가 내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면 좀 어이없게 느껴진다. '니가 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나온다고 해보자.
대학이든, 직장이든, 뭐든 내 선택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것에 수렴해 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무언가 두려움이 느껴질 때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니가 뭔데, 생각해 보면 정말 그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뭔가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실패가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류라는 선택이 실질적으로 유의미하게 가능한 것이다. 다른 걸 해 볼 수 있으니까.
engage라는 단어에 대한 해설을 한 교수님한테 들었던 게 인상 깊다. engagement, 일반적인 의미로는 약혼이 있다. 그런데 교육 분야에서 이 표현은 '몰입'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군사 용어로는 교전, 구체적으로는 전쟁에 임한다는 뉘앙스가 내포해 있다. 앞선 약혼도, 몰입도 마찬가지로 내 의지로 해당 상태에 들어간다는 뉘앙스를 공통점으로 가진다. 그러니까 더 이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회피가 아닌, 내 의지로 선택하는 보류로써 해석하고 싶다. 니가 뭔데. 아 아직 잘 모르겠으니까 잠시 치워봐.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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