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조언

가랑비 2021. 1. 16. 12:31

  2년 전 이 맘 때쯤 나는 교통사고로 입원해있었다. 친한 누나가 심심해할까 봐 책을 5권을 선물해줬다. 그 덕에 평생 안 읽을 책들을 몇 권 읽었었고 그런 세심한 배려에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진짜 심심했나 보다. 계속 누워만 있게 되는데 활동이라곤 물리치료받으러 다녀오는 정도뿐이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도 기꺼이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도 뭔가 내 안에 한 구석엔 덜 채워진 기분이 사라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지금은 이걸 마음이 연결되지 못한 상태이고, 나의 경우에는 마음이 죽어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 때울 겸 들어갔던 유튜브에서 한 강연을 발견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다.

 

  평소 나는 웹툰을 제일 많이 봤었고, 유튜브는 필요한 것을 검색해서 보는 용도로 쓰는 편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도 페이스북으로 강연 신청해서 들으러 가고 이상하게도 강연을 꽤 들으며 다녔었다. 그날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영상이 나의 삶에 큰 사건을 일으키는 첫 단추가 됐다. 정혜신 박사님의 '공감'에 대한 주제의 세바시 강연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대화와 공감과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근데 이 영상은 나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진짜 공감이 뭔지, 감정노동이 뭔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너무 다 맞는 말 같았고 그 즉시 활용해 봤다. 그 덕에 관계가 아주 끊어질 뻔했던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결과를 얻은 것엔 단순히 강연만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지만 이 덕에 내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얻고 대화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더하여 여러 가지 들이 연쇄 작용한 것이다. 감정이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방법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셈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충조평판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뜻하는 박사님의 표현인데 굉장히 강력한 표현인 것 같다. 힘들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위한다고 조언 한 마디 했다가는 마음 문이 바로 닫혀서 대화가 끊긴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 상황은 정말 벼랑 끝에 몰린 그런 느낌의 사람에게 더 크게 작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근데,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느낌인지 다들 잘 아실 거라 생각한다. 이런 귀한 내용을 배우게 되어 또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박사님의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책도 사 읽고, 강연도 들어봤다. 강연에는 역시 기대한 것만큼의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익명으로 질문을 할 수 있다길래 쓸까 말까 또 엄청 고민 끝에 적어 냈다. 아마 내 질문이 뒤죽박죽 정리 안된 내용이어서 그랬겠지만 당시 내가 원했던 답을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모험이 또 시작됐다. 직접 깨닫고, 직접 터득하는 것에 중독된 사람 마냥 박사님의 말을 좇는 것을 그만두고 직접 부딪혀 나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이게 삶에 유일한 도전인 상태였구나 싶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식의 학습을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고 멈췄다. 그리고 외부의 것을 적극 수용하고자 한다. 어설프게 배운 것만큼 치명적인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느낌이 살짝 바뀌기는 했으나 여전히 내 입에서는 조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나는 대화를 하겠다고 해놓고 여전히 나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기만 하고 있었다. 내가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이다. 내가 배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내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태가 되니 못 보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조언, 이것은 상대를 위해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남에게 했던 조언은 사실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고 내가 필요한 말이었다. 지금껏 상대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괜히 기분만 상하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을 내 눈 앞에 보이는 상대에게 해왔던 것이다. 그게 대화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나에게 조언하자. 

 

  나의 필요를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다른 사람들은 접근 권한을 줘도 접근할 수 없는 데이터가 나에게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급격한 산업혁명시대에 더욱더 중요한 가치를 발하는 부분 아닌가? 자신의 가치를 좀 더 알아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맞는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조언하자. 그동안 자신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하면서 항상 답은 바깥 어디엔가 튀어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아주 어릴 땐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할 시기다. 근데 나는 이미 적지 않은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조언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제 괜한 사람 붙잡고 조언이랍시고 해서 기분만 잡치게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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