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가랑비 2021. 1. 13. 12:31

  이런 뻔한 말 쓰기 정말 싫다. 어렸을 때부터 행복이 중요하다. 도전, 열정이 중요하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남는 게 없었다. 정말 거짓말같이 귀에 안 들어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결론만 말했기 때문이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구체적인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것들을 냉소적으로 보고 있었고,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누구든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은 어렵다. 그래도 내가 주장하는 이 말을 내가 납득한 과정을 풀어보려고 한다. 

 

  어느새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원대한 이상을 품었다. 한 마디로 욕심쟁이였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비극의 시작이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0에서 또는 그 밑에서부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내가 버틸 수 있던 것은 나의 모습을,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려고 끊임없이 마주했다는 것이다. 모래성은 쌓아봐야 무너진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새에 깨달았던 모양이다. 원대한 이상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멋진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었다. 멋진 세상은 너무 멀어서 일단은 꿈으로 내버려 두기로 하자. 대신 나는 가깝지만 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가깝기 때문에 나부터 공략했다.

  공부하라, 신앙을 가지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정말 힘들었다.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왜 안 되는지 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직접 겪어보면 단서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기억하고, 내가 원하는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생각했다.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는 생각을 항상 기억 저편에라도 가지고 다니면서 찾아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실마리를 얻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잠시 쉬면서, 꽂히는 것을 막 해본 뒤부터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내 삶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었다. 문득 나는 세 번째 좌우명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해지면, 그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찾게 된다. 주변에서 구하든, 탐색하든 찾게 되어있다. 

 

  어릴 때 강요할 필요가 전혀 없다. 호기심을 갖는 부분이 있을 때 윤리적으로 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뭐가 있는지 찾는 힘을 길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어린 시절 들었던 어부와 아이 이야기처럼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어릴수록 어른의 입장에선 쓸데없어 보이는 것이 태반일 수 있다. 일반적인 어른은 이미 성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사회도 지금까지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형태일 뿐 이상향은 아니다. 현실이 원래 그렇다는 말은 그 상황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자기편을 만들려고 하는 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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