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질문

가랑비 2021. 1. 15. 12:31

  질문한다는 것은 궁금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궁금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이 있으려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죽어있으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 때 다큐도 한국인들의 질문하지 않음에 대해 나온 적도 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관심이 없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의견 나눔이 중요한 부분인 강연에 자기 발로 가서도 질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이클 샌델 열풍이 잠시 불었었다. 한국에도 와서 강연을 할 정도로 책이 유명해졌었는데, 그 강연을 형 덕에 들으러 갈 수 있었다. 내용은 아주 뜨거웠다. 질문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내게 질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강연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을 들지 못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웠고, 나는 처음 접한 내용들이 갑작스레 전달돼서 생각할 시간은 짧았는데 머릿속에서 정리되느라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같이 들으러 갔던 옆에 앉은 가족이 들릴만하게 "질문하고 싶다."라고 몇 번 얘기를 꺼내봤지만, 하지 않는 쪽으로 타이르는 말을 해줬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그 강연은 기사들이 몇 개 올라올 법했으며 마침 한 기사를 보게 됐다. 한 대학생분의 질문이 당시 듣기에도 정제된 질문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롱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아니 내가 그분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모든 일들이 금세 관심 밖의 일이 되는 것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며 다시 떠올려본 내 모습은 가히 처참하다. 당시 내가 그렇게 질문하고 싶어 했다. 만약 질문을 하게 됐더라도 비웃었던 분을 똑같이 비웃었을지 궁금하다. 나 또한 비난하는 사회에 깔린 비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질문하지 않는 배움터, 이는 단순히 배우는 이들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교실에서 질문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못 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마음이 죽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이 죽는 것을 배우는 환경에 놓여있다.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몇 가지 들어보면 한국사회는 다른 나라와 달리 굉장히 독특한 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관계'중심 사회라는 점이다. 그 예시로 원숭이, 호랑이, 바나나 이 세 가지 그림을 두고 두 개를 묶어보라는 질문을 하면 독특하게 우리나라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고른다는 말을 해준다. 아무리 청자가 생명과학 그런 계열의 높으신 분이라 할지라도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말을 하신다면서 얘기해주신다. 기타 예시들이 많은데 들어보면 납득 갈만한 요소가 많다. 

  가만 보면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은 상대를 '놀림'으로써 장난을 친다. 놀리다의 사전 정의를 보면, '짓궂게 굴거나 흉을 보거나 웃음거리로 만들다.', '구경거리의 재주를 부리게 하다.' 대체로 전자이나 심한 경우는 후자도 있겠다. 후자 수준이 되면 말할 것도 없이 범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놀림감이 되는, 즉 장난감 취급받게 되는 상황이 되면 범죄 수준인 것으로 생각하니 더 얘기하지 않겠다. 그 이전의 것을 다뤄보자. 내가 느끼기에도 확실히 관계중심사회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은 시선을 의식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점에 대해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안 그래도 눈치 없다'는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틀을 만들어 거기에 스스로를 욱여넣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내가 놀림받은 적은 많지 않다. 하지만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자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저 화살이 오지 않길 바랐다. 물론 더 생각 없던 때를 생각해보면 나 또한 놀리는 것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또 끔찍하다. 

  그런 환경에 처한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놀림감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놀림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나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런 자신도 다른 사람을 놀리고 있다. 그렇게 행동과 사고가 한계가 형성되고, 그 한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전이 두렵다는 것을 학습하는 과정이다. 즉, 빛을 발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게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심지어 이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나중에는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비난받게 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될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과정처럼 단 하나의 좋은 느낌은 없는 상황에 처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환경에서 제일 심각한 것은 나조차도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나도 화살을 꺼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 착한 사람은 꺼낸 그 화살을 나를 찌르는 데 쓴다. 근데 그 화살은 자신이 맞고 자신의 피가 묻은 화살을 꺼낸 것이다. 결국에는 아무도 화살을 들지 않아도 계속 내가 맞은 화살로 나를 계속 찌르는 상태가 되어있다. 이 과정의 끝은 마음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죽음'으로 끝난다.

  우리는 지금 비난을 배우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비난도 폭력이다. 한국 교육에서 폭력을 금지한 것은 문제가 발생하고도 있긴 하지만, 폭력을 금지한 것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장난의 탈을 쓴 놀림과 비난이 구분되어 버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학개그라는 말이 있는 게 대단하면서도 무섭다. 아직은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대신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 그것은 어디 저 멀리에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찾고 보살펴주는 것이다. 누가 봐주지 못한다면 나라도 해야 한다. 정 안되면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자. 일단 사는 게 중요하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 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하고 싶은 게 많다. 이런 어리고 여린 마음들을 내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 나의 깊은 곳에서 올라올 수밖에 없는 욕구를 찾아야 한다. 호기심, 관심, 궁금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가두지 말아야 한다. 일단 정 안되면 그 호기심 가는 것을 찾아서 혼자서라도 해도 좋다. 다시 말해서 빛을 뿜어 낼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도전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에서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게 당연하다. 그걸 나라도 귀엽게 봐줘야 한다. 근데 사람은 결국은 발전하게 되어있다. 쌓이다 보면 잘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경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경험으로 비난에서 놀림에서 자유로워지는 힘을 얻을 것이다. 

  공부법 전문가로 소개되는 조남호 코치의 말 중에 와 닿은 말이 있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의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방법을 알려줄게 공부해보라는 식의 말은 무엇보다 더 따듯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도 비난을 배우는 사회에 의해 나를 의심하고, 비난을 배우는 사회에 의해 나를 비난하게 된다. 성장할 원동력을 잃어버린다.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필요성을 느끼면 알아서 찾아서 하게 되어있다. 그런 사람이 도움을 구할 때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것이 진짜 조언이다. 사람은 안정된 상태에서 방법을 알면 알아서 잘하게 되어있다. 

 

  나는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어이없었다. 그런다고 죽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꽃으로 때려도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많다. 다만 지금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진짜 '현실'이다.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이 이젠 놀랍지 않다. 다들 놀라워하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는 적응한 듯 보인다. 오랜 세월 문제가 있으면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오랜 세월 동안 뭔가 잘못된 게 안 고쳐지면 계속 연구해서 고쳐나가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다들 그 '현실'을 사는데도 벅차서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이런 삶을 이겨내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이런 사회를 이겨내는 분들을 보면 나 빼고 다 비범해 보일 때도 있다. 그 '현실' 살아가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지금 행복해야겠더라. 지금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겠더라. 어른들이 지금껏 알려준 방법으로는 못하겠더라.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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