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혐오표현으로 가득한 게 온라인상에 두드러지게 보였었다. 지금은 경험적으로, 소강상태를 지나면서 한 단계 성숙한 건지 예전보다는 중립 기어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우리나라에 희망을 갖게 된다.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비극인 것은 두 말할 것 없지만, 누군가 죽는 만큼의 고통과 이슈가 있은 뒤에, 그 후에라도,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기 전에 개선이 되면 좋겠지만 말이다. 어느 나라 뉴스를 보면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치는 곳들이 있는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 때 그래도 우리나라는 나아가는 노력을 하는 곳이구나 싶다.
정치, 종교 등 친척이나 친구 모임에서 꺼내면 안 된다는 말 여기에 더해서 자랑으로 들릴 법한 이야기 등,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가만 보면 할 말이 뭐가 남나 생각이 든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리 꼬아 들으려 해도 꼬아지지 않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도 찾아보면 몇 가지 있겠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세계 안에서는 '취향'이 가장 좋은 선택지이다. 한 때 취향존중이라는 단어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표현의 뉘앙스를 보면, 상대방의 취향이 달갑지는 않지만 건들지는 않겠다는 의미가 섞여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 번의 경험을 보면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고, 그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흔했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둘을 구분하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 점점 열리는 분위기가 보인다.
취향은 다름의 결정체이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 안에서 같이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다. 오히려 관점의 방향을 변형해서 얼마나 유사한지를 보는 게 낫다. 연인 사이에서도 처음엔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하면서 대화의 물길을 연다. 그 물길이 상대방의 강줄기, 호수, 바다 등에 닿을 때까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 지점까지 와서도 같다고 느낄 가능성은 정말 희박하다. 그 다름조차 매력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연인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고, 성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경험을 시작하듯이 취향을 통해 다름을 수용하는 경험을 시작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본인의 취향에 진심인 상태라면 그 취향을 표현할 때 그 사람은 행복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행복과 함께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수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취향은 행복을 내포하는 개념이 된다. 주의할 점이 있다. 취향이 옳고 그름, 또는 권력 등으로 섞여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취향이 더 이상 취향으로만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취향이 취향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상태로 표현을 하게 된다면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 놓일 것이다. 1. 타인에게 옳고 그름이나 권력 등으로 비교당하는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2. 나의 뜻이 온전히 표현될 수 있고 3.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자아실현의 영역에 도달하기 쉬운 방법이 되기도 한다. 취향에 대해 표현할 때 그 사람은 편안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편안함과 미소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며 쉽게 다름을 포용하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