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의 특징을 보면,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 등이 세상의 전부여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나. 특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차이에 대한 해석에서 오는 결론을 믿는 데까지 시간이 짧다는 특징도 있다. 이런 특징에서 오는 것의 일환으로써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포함되는 듯하다. 한편 나에 대한 인식이 발생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도 맞겠다. 목도한 세상이 전부인 상황에서 '나'의 발생은 가히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삶의 희로애락이 가장 강도가 강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슬픔에 빠지거나, 기쁨에 취하거나 하는 등의 것들이 큰 노력 없이도 큰 강도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들이 훗날 기억에 남아 삶을 좌지우지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시기의 경험들은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흑역사를 만들고 잊고 싶은 과거로 여겨질 수 있는 것도 이해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특히 '비교'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크다. 경쟁이 심한 분위기 속에서 우열의 가림은 생존의 위협에 달하는 고통을 가할 수도 있다. 반대편에서는 그 우위에 선 것으로 권력 놀음을 일찍이 체험하기도 하는 것 같다. 성숙이라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아직 명확히는 모르겠으나, 일단 자아의 존재는 물론이고, 타인의 존재를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들이 아직 많지만, 중2병의 치유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준으로 분명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최소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갖추지 못했을 때를 설명하는 용어로, 흔히 자아도취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르시시즘적인 형태로 인식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못나게만 보는 것을 의미하는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나를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사랑도 너무 어려운 용어이다. 대신, 조금이나마 덜 막막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관찰이다. 대신, 여기에 쉽게 따라붙기 마련인 판단이나 평가를 잠시 보류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 모습에서 보이는 특징점이 실제로 그 판단이나 평가에 들어맞으리란 법이 없다는 점을 전제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관찰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수용으로 이어지는 데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것이고, 그것이 곧 사랑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다. 이제서야 조금씩, 한 걸음씩 나에게 가까이 가서, 내가 보인 모습들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는 내가 갖고 있는 몸의 모습들을 판단이나 평가를 벗어나서 봐준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이 상태에 충분히 머무른 뒤에, 이것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하는 쪽이 내가 선호하는 방향이다. 특히 그 모습을 통해서만이 발현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게 내 삶에 주어진 목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