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책임을 지는 행위는 쉽지 않아 용기가 필요하다. 책임감과 거리가 멀었던 과거의 나는 미안함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다시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비효과라는 게 참 내게 영향을 많이 미친다. 고딩 때 생각했던 게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이번이 마지막이겠거니 한다. 분노와 두려움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싶다. 나는 화를 내는 행위를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짜증의 형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올 때가 있어서 매우 아쉽다. 그래서 이제라도 분노와 두려움을 빠르게 인식하는 스킬을 단련하고 싶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도 남발하면 그 의미가 흐려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안 하는 것보단 무조건 낫다. 또한 말 뿐인 미안함도 허공에 흩뿌려지고 휘발될 수도 있긴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단 무조건 낫다. 그래서 필요한 상황 보다 한 번 정도 더하는 빈도, 미안함이 가닿을 수 있게 돕는 행동을 엮어서 함께 주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내게는 아직 부족한 면이라 아직은 상상이다. 그럼에도 이 초입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내게는 마지막 단계나 마찬가지다.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늦어도 1년 안에는 정착한다.
나비효과로 해석했던 나의 수많은 과거 중 한 단면에는 이런 게 있다. 영화 나비효과를 보고 내 행동에 제약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해석했었다. 영화는 고통총량법칙 같은 암묵적 룰이 적용된다. 내가 잘되고자 한 행동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가 가는 식이다. 이걸 보고 약간 오해했었던 모양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으니,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며 행동에 제약을 걸었던 것이다. 지금 보니 완전 잘못된 해석이었잖아? 한편 내가 받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후에 이게 내 행동을 너무 옭아매는 것을 인식하고, 반대로 뒤집었다. 내가 받고 싶은 행동을 하면 되겠네? 그 뒤로 여전히 이 문장을 되새기는 중에 있는 듯하다. 이게 황금률, 백금률이라는 표현으로 오래된 내용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제 나의 입장을 꽤나 많은 부분 설명 가능하게 정리했고, 두려움이 정말 많이 해소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움츠려드는 내가 이제는 정말 짜증이 난다. 머리로는 별생각 없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몸이 반응하니 그렇다. 그래도 어쩌나.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니까. 내 몸을 봐주고, 달래주기로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아쉬운 부분이 남아 있다면, 짜증을 내게 되는 부분이다. 이제는 많이 개선이 되어서 특정 부분에서 휘발적으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조차 나는 뿌리 뽑고 싶다.
웃기게도 그런 짜증을 내가 먼저 내고는, 상대가 거기에 맞불을 조금 놓으면, 내가 낸 짜증은 인식도 못하고 상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꼴이다. 이 꼬라지는 내가 진짜 싫다고 생각하는 거였는데,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게 너무 싫다. 정말 다행히도 그것을 인식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였구나 하고 그제서라도 꼬리 내리게 된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서라도, 상대가 나를 향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을 때조차, 무작정 맞불을 놓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여기서도 상대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보는 게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인데, 아직 훈련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 짜증이라는 걸 보면 흔히 상대에게 가는 게 더 많은 듯하다. 외부요인이 트리거가 되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니 내게는 더 쉽게 더 빠르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 나는 수년간의 단련을 통해 내 안에 해를 가하는 짓은 최소화했기 때문에 자해를 하지는 않는다. 아직 이런 반사적인 공격이 남아 있는데, 이런 것도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알아채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내 짜증을, 분노를, 두려움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게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인 것 같다. 기본기가 되는 셈이다.
나는 대화를 정말 중시하는데, 이 역시 내게도 대화를 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를 품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여유가 없으니 상대에게도 기대는 것이다. 호오... 그래도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면이 있다면, 정말 불필요한 말들은 버리는 연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내뱉는 그런 게 있었는데, 뱉지 않고 넘겼을 때 기억에서 잊히고 말았다면 그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본기에 집중하면 되겠구나. [사랑의 기술]에서 각인했던 정신집중이 참 도움이 많이 된다. 기초공사가 된 셈이다. 이에 더하여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 물론 이것보다 대화에 중요한 것은 맥락을 파악하는 관찰능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역시 다시 관찰 능력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 관찰하는 연습을 다시 시도해야겠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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