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감을 하기보다는 조언이나 안심을 시키는 말을 하고 자신의 입장이나 감정을 설명하려는 강한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충동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최근 들어서야 다른 길을 찾게 되어 점차 벗어나고 있다.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나마 효과를 본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충동에서 벗어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니라 나의 필요에 대한 충족에 있었다. 내 필요가 내게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상대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나를 지키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상태로 보인다. 달리 말해 이 충동은 나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을 수도 있겠다.
물론 상대에게 가까이 가 곁을 지켜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받을 일은 더욱 아니다. 상대에게 공감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나에 대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믿음이 있다. 나의 필요가 온전히 충족이 될 수 있다면, 잠잠해져서 진정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게 나는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단계로 확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내게 있어서는 사실이다. 내가 경험한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을 조용히 외면하고 회피하며 살아왔다. 이런 회피하는 모습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내가 회피한다는 사실조차 외면했었다. 회피의 회피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단순히 회피로만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감당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잠시 보류한 것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중요했다. 나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이 중요했다. 이게 충족이 되니 남의 필요가 보이기 시작했고 채우는 경험을 채워나가는 중이다.
필요가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분석해 보면 다양한 양상이 있다. 나의 경우 이해가 중요했다.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시도를 하니 금방 해소가 되는 것을 경험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해 도움을 주려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조언'같은 말의 형태로만 주로 했었다. 안타깝게도 효과가 적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감은 꼭 한 가지 방법에 국한되어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존재감을 확보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게 이해, 존재감 등은 정말 생명에 준하는 크기로 작동했다. 이게 충족되지 못할 때 마치 죽음을 맞는 사람인 듯 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남의 안위가 눈에 들어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입장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살고자 발악하는 것과 같다. 이 충동은 그 사람에게 목숨만큼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고자 하는 행동에 대한 충동만큼 '자연'스러운 것도 없다. 다만, 단 한 가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수단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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