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우선순위를 세워서 시도를 했을 때 뜻대로 되었던 적이 없었다. 계획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이제는 변화를 겪으면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하는 경험을 쌓고 있는 듯하다. 지금 와서 과거에 우선순위를 세웠을 때를 회상해 보면 그게 먹히는 게 불가능했겠구나 싶다. 당시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했었는데, 사회가 원하는 것과 나(지금의 표현으로는 나 또는 몸이 될 수 있다.)가 원하는 게 달랐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봤던 것 같다. 지금 봐도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역시 부족한 게 보인다. 비어있는 게 무엇이었나 하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름의 비중이 더욱 큰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우선순위라 함은 나의 존재가 빠지면 안 된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아는 게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해야 하는 것들의 나열은 위험하다. 수행에 지장을 겪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갈수록 커지는 공허함을 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떠올려보면 세상에 이것만큼 어려운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란 막막하고 막연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물론, 이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그 안의 간극을 메꾸지 못한 채 있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더 외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인간의 욕구, 원하는 것을 알게끔 유도하는 사회는 아직까진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문제가 있으니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씨불여 보자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시작된 부작용과 불행에 맞서 싸웠다. 이 결과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 그 반작용으로 전례 없는 규모의 갈등을 일으킨 영향이 있다고 보이기에 이 부분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신 더 부드럽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게 내가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내용을 볼 때 '개인'이라는 표현이 현대에 와서야 탄생한 개념이라는 식의 설명이 있다. 이 표현을 들으니 신선한 충격이 내 안에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중세의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가족 단위의 공동체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 생각해 보면 머시기 2세, 저시기 주니어 이런 표현 자체가 그 가문의 사람을 의미하고 구분하기 위해 1, 2 같은 식별코드를 부여한 것뿐이지 개별적 존재라고 본 것이 아니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공동체의 욕구가 곧 그 구성원들의 욕구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물론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해서 돌연변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홍길동처럼.).
사회라는 표현은 가족은 물론이고, 공동체 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런데 사회가 원하는 것이 조직으로, 공동체로, 가족을 넘어 개인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쉽게 전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산이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도 방법을 잘 모르고, 사회조차도 원하는 것을 주입시키는 방법 외에는 모르고 있는 실정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자는 말이 아니다. 이제부터 해나가면 될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많은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문제이고, 이 것이 새로이 나타나는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생존법이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 설정과 내가 원하는 것과의 관계는 뗄 수 없다. 다만 나라는 존재가 사회에 속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의 욕구와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뿐이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의 결과물일 때, 잘 작동하는 우선순위 설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한 연마 작업과 유사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우선순위를 잡아나가면 될 일이다. 이 두 가지에는 청춘을 갈아 넣어도 될 것이라는 표현을 감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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