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는 상황을 볼 때 결국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은 2년 전의 일이었다. 학업을 위해 그 좋아하던 사람들 만나는 것도 줄이고, 다른 취미활동도 줄였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보냈다. 엑셀에 일주일 단위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록도 해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눈에 들어온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보낸 시간들은 거의 다 목표했던 행동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때 확실히 알게 됐다. 물론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목표활동을 위해 시간을 확보해 보는 경험은 큰 깨달음을 준 행동이 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의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지 않았다. 이것을 잇는 작업이 중요한 것 같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안 하고 있는 시간을 보낸 세월이 너무 많다. 이 상황에 절여져 있는 듯했다. 천만 다행히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한 덕에 원하던 변화를 얻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해보자면 하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이더라도 못하는 게 많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행동력을 높일 수 있는 핵심이 되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에 시간을 쓴다는 것이 결국엔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에 시간을 쓰게 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었다.
시도한 것들 중에 큼직한 것도 있었지만 사소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 하나의 예시가 되기도 한다. 산책을 통해 여유의 감각을 알게 되면서 시간의 문제에 대해 더 체감하게 되었다. 산책은 목적지가 없다. 목적지가 없이 걸으면 걸음 속도부터가 달라진다. 목적지가 생기면 걸음속도가 자연히 빨라지기도 하는데, 바쁘다 바빠 현대인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인 것도 있다. 이처럼 산책과 시간적 여유는 떼기 어려운 관계다. 산책, 목적지 없이 걷는 행위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걸으면 그 속도가 주변을 바라보게 한다. 정말 가까이에 이런 게 있었다고? 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주변 세계를 더듬어가며 확장한다. 온라인 세계에서 전 지구를 탐색하는 것도 좋지만, 산책으로 물리적인 내 주변의 것들을 살피는 작업도 상당한 재미를 준다. 여유를 만들어내는 감각을 기르며 다시 삶을 돌아보니 '정신없이' 그리고 '시간이 없는 듯이' 사는 삶에 불과한 듯 보이기도 했다.
어릴 적 내가 엄마의 표현 중에서 상처로 남았다고 하는 게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다. 왜 상처였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말하고 싶었고, 엄마가 들어주길 원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커서 뭐가 될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말 수가 적었다고 한다. 말 수가 적었던 이유는 말하기를 그만두길 종용받은 것에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내 딴에는 최선이었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게 바쁜 엄마에게 가닿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바빠서 그런 것이었다면 이렇게 상처가 되지 않았겠다. 왜냐하면 엄마가 얘기할 때는 얘기하시다가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가 불편한 게 생기셨는지 그럴 때마다 시간이 없다는 말로 대화가 종결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엄마가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또 아니어서 이해가 된 뒤에는 해소가 되었다.
한 선배님이 언급하길,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을 계속 아낀다고 해서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매우 공감이 갔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미 수많은 영역에서 노출이 되어 공기처럼 된 것들이 많다. 냉장고, 스마트폰, 컴퓨터 등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종이, 한글 등도 마찬가지다. 기술(도구)의 발전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필연적으로 개인에게 수많은 시간을 안겨준다. 스마트폰, 컴퓨터도 종이나 한글도 전부 마찬가지이다. 다만 냉장고 스마트폰 컴퓨터 같은 도구들은 개인에게서 기술을 그 대가로 가져간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발효 같은 것을 통해 저장의 기간을 늘렸다. 길 찾기는 지도를 통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길 찾기는 네비의 역할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가져다주었고, 결국 그렇게 번 시간으로 인간은 무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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