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파편

장점찾기1

가랑비 2025. 8. 18. 11:05

  주변에는 유독 완벽주의자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거로 해석하게 된다.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정점을 찍는 사람들도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채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저거는 이래서 안 되고, 이거는 저래서 비효율적이니까 하지 말고, 요거는 겨우 그거 하려고 그러냐는 둥의 말들이 많다. 나의 경우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고민하게 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얻은 게 된다. 그러다가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이런 사회가 만들어진 것일까? 자원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당장에 나는 숨을 못 쉴 지경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적어도 숨통을 틀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발견해 냈다. 이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비판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그런데, 비판만 하고 있는 게 과연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맞나? 걸림돌이나 된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더욱 많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하고 있던 것이다. 싸잡아 욕하는 거는 기본이었다. 다시 보니 사람들은 말한 것이었다. 비난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매가 있어야 된다고. 안타까운 것은,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런다는 얘기를 한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유형이 아닌가? 그래 내가 오해했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격려, 응원, 보듬어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던가? 그런 말을 듣고 싶다, 그런 말이 필요하다고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아 그런 거 못해' 이러지 않던가? 만약 격려, 응원의 말도 해주면서 지적을 한 것이라면 그게 진짜 위하는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적 접근을 경험하다 보니, 단점만 지적하는 것 또한 가치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비판, 비난 다 괜찮다.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이 있는 것도 존중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한편 아쉽다. 어쩌라는 거지? 그 얘기들을 듣고 있는 당사자는 그 비판과 관련이 적은 사람이다. 다시 말해, 비판이 가야 할 곳에 안 가고, 그 분노는 그 옆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한 때,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길, 해결책 없는 지적은 비난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었다. 지적만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겼다. 물론 지금은 약간의 조정을 거쳤다. 무언가 지적할 땐, 그것에 대한 개선 혹은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는 걸 '매너' 혹은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라 지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가장 빨리 배우는 단어가 무엇일까? 엄마 아빠 다음으로, 이거 저거 지시형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엄마, 아빠 다음으로, '아니야' 혹은 '안돼'이다. 안타깝게도 해도 되는 것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에는 통제의 언어가 더 발달되어 있다. 물론, 안전을 위해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그 단어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꽤나 유의미한 지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 된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 수 있긴 하겠지만, 아이들이 싫은 것이 있을 때 "아니야"를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제의 언어에는 문제가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울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비판, 비난 이런 표현들 또한 일종의 통제의 형태로 작동하는 비중이 크다. 어떠한 통제인가? 작게는 개인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억제하는 것이며, 크게는 사회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한 통제 속에서도 잘 적응을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특히 부모 자녀 간에 어긋나는 가장 주된 원인이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춘기 때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소통과 이해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게 좋을까? 문제점을 지적만 하고 마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또한, 나는 그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장점찾기를 발견하고 지금껏 아주 잘 활용해오고 있다.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범죄를 야기하거나 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문제를 지적하기 이전에 이점을 찾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단순한 예로, 학생일 때, 기타 한 두 달 배운다고 죽는 거 아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 길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활동하는 것을 학습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학습이 쌓여서 공부할 때도 능동적인 학습이 가능해질 수 있다.

  공식을 싫어하긴 하지만, 설명하는 과정에서 편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 번 시도해 보았다. 주장 = 이점 * 범위. 오래전 글이었던, '진리의 탈을 쓴 혼란'에서 다룬 내용과 유사한 전제가 깔려있다. 진리라는 착각이 가져다주는 혼란이 사회에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나의 주장으로 보는 관점을 가져온다. 그 주장이 가진 이점과 그 이점이 적용이 되는 시대, 대상, 관계, 장소 등의 범위에 따라 그 주장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해 보고자 했다. 이처럼 그 어떠한 것이든, 이점이 존재할 것이고, 그 이점이 먹히는 범위가 다를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명 어느 시기에, 어느 이에게는 이점이 있었기에 자리 잡았던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내 입장에서 내 시대에서, 내가 속한 집단 속에서 국한된 관점으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균형이 무너지며, 상대방을 쉽게 비난하게 되고,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과정은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만들어져 왔었다. 

 

  다시 좁은 관점에서 본다고 할 때, 나는 숨통 틀라고 시도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자신감도 없고 어떠한 동기도 제거되어 버린 상태에서 사회를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버거웠다. 삶의 만족도가 목표가 된 것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게 이 장점찾기이다. 혼란 속에서 어떠한 것도 믿지 못하게 되며,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은 철저한 의심으로 가득했던 나를 행동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행동들을 발판 삼아 그다음 단계를 보고, 그다음 단계의 더 나은 발판을 만들고, 지속적인 개선을 걸어온 것이다.

  비판을 가장한 통제는 나를 속박하고 죽게 만들었을 뿐이다. 장점찾기는 나를 살게 했다. 비판하는 것은 물론 필수적이다. 사회가 지속되려면 자정 작용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 능력은 필수이다. 그러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비판이 누군가에게 비난으로, 통제로 전달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특히 가족처럼 아끼는 사이에서라면, 비판 한 번 하기 전에 응원 한 마디를 먼저 해주자. 이미 비판만 남은 세상에, 한 사람쯤은 격려만 해도 되지 않을까. 오냐오냐하라는 말이 아니다.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아래 링크는 주장 = 이점 * 범위의 출발이 된 내용이 담긴 글, '진리의 탈을 쓴 혼란'이다. 

https://garantbe.tistory.com/32

 

진리의 탈을 쓴 혼란

세상에 대해 혼란을 가지는 부분 중에 '당연한'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어떤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garantb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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