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반쪽을 만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큰 행운이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 그냥 나를 보는 듯한 면들이 보이는 타인을 마주하게 될 때 오묘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람이니 분명 다른 점이 있으나, 그 마저도 내가 배우고 싶은 점들이라면 어떻게 생각이 들까?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을 텐데 역치를 넘기는 일이 생겼다. 내가 그동안 무수히 많은 파편들을 수집해 왔고, 그 파편들은 이름처럼 나에게 어떠한 연결점이 없는 별개 영역으로 여겨져 왔었다. 그 파편들 중 나에게 중심 기둥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 많은 데, 그중 특히 장점찾기, 가치 교환 위에 돈 얹기(가제), 소비와 생산의 재개념화 등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이 기둥들의 기원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의 저편에 존재했던 나의 큰 아픔, 그리고 나의 사명으로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훨씬 더 나의 길이 선명해짐을 느낀다...
가칭으로 따숩님은 간단한 예시를 들며, 본인의 감정이나 호불호를 모르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며 아기들을 보면 호불호가 강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에 반해 자신은 '어느 시점부터는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서든 여러 이유에서 호불호를 감추게 되었고, 감추는 걸 넘어서 이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아예 알 수 없게 된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며 자신을 안쓰럽게 봤었다고 한다. 이 문장에 바로 눈길이 멈췄고, 점차 가슴 한편이 아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걸 잊을 수가 있구나. 한 편으로는 개인적으로는 온전히 벗어났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쁘기도 했지만, 사회에 이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라 슬펐으며,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해 해온 수많은 노력들이 쓰일 곳을 다시 찾았다는 생각에 반가우면서 동시에 여전히 고통이 고통인지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참으로 다행히도 따숩님은 이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무언가의 분노나 슬픔이 은근 완화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내가 엄마에게 더 이상 짜증 내지 않을 수 있게 된 마법 같은 순간이 연상된다. 방구석 여포에 상찌질이 모습이라 여기는, 밖에선 착한 척하면서 집에서 엄마한테 뭔 말만 들어도 짜증 내던 나였다. 어느 순간 나는 이해받고 싶었다는 것, 다른 누가 아닌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걸 단순히 엄마한테 얘기를 했을 뿐이었는데, 엄마는 바뀐 것도 없었지만, 그 순간 즉시 내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에게 반문해 오는 듯 어이가 없을 정도로 편안해짐을 감각했다. 치유의 마법이 내 몸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따숩님도 이 비슷한 걸 경험하신 거라면 정말 안심이라는 생각에 다행이었다.
따숩님이 언급한 문장들처럼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선생님 또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게 다듬어져 있는 나, 맥락에 맞지 않게 지나친 표현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당시 사지 멀쩡하지만 팔다리가 잘려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원인이 나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회적 가지치기. 누군가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할 때, 반사적으로 들리는 말들, "그런 건 대학 가서 해", "그런 건 취미로 해" 등의 말들은 한 창 부모로부터 벗어나며 원하는 것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흔히 '사춘기' 시절에 이런 말들은 독극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을 놓고 나는 가지치기를 떠올렸다. 나는 고등학생 때, 꿈 찾기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여러 직업군의 인생 선배들을 만나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문제의식은 꿈 =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기엔 역부족이었긴 하지만, 나의 시야가 넓어지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대학 가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는 걸 직접 본 것이다. '가지치기를 할 것이 아니라 가지뻗기를 해야겠구나.'하고 눈을 뜬 순간이었다.
사지 멀쩡한데 내면의 나는 팔다리가 잘린 상태이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 있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고장 난 신념들의 발생 기원이 이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나는 못 해', '나는 질 수밖에 없어' 같은 패배주의는 괜히 생긴 게 아니었구나.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한몫했다는 것은 맞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큰 고통은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서서히 병들고 죽게 만든다고 여긴다. 나는 늪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데, 도움 요청은 할 줄도 모르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조차 의심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끔 생각한다. 나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나만 제일 힘들어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나는 그랬다. 살려고 발버둥을 친 것뿐이다. 살려고 발악을 했다. 천만 다행히도 그 길에 내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는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사회, 교회가 있기에 가능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고 했던가.
다만, 지금 이 맥락에서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구원자를 바라던 난, 끝내 내가 나를 위해 손을 내미는 존재가 되었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따숩님이 떠올린 위로와 공감이 되었다는 문구가 또 이걸 떠올리게 한 것이다.

'나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며 막막하다. 이 삶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그럴 때 여러 나이의 나를 떠올린다. ...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

이걸 보자마자 나는 그 유명한 웹툰 '덴마'의 지로가 과거의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그럼... 내가 도울게." 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랬기에 따숩님이 전해준 문장들을 보며 여러 시점의 내가 나와 함께 있다는 상상은 처음 해보았는데, 괜히 든든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흥미롭게도 따숩님은 해당 문장들을 공유해 본 이들 중에 자신처럼 든든하다는 스타일로 쓴 사람은 드물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어서 포옹을 해주면서 하는 대사가 있다. 따숩님도 이 내용에 대해 감동을 받는 듯해 보였다.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네 앞에 놓여 있던 이런저런 미래 중에
날 선택해 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좌절 가득한 현재를 이겨내는 데 정말... 큰 비중을 차지했던 대사와 장면이다. 이건 믿음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현재 나의 모습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잊었던 나를 되찾은 이 감각은 정말 묘하다. 내 어린 시절 꿈이라고 할 걸 찾은 것도 아닌데. 내 어린 시절 아픔을 찾은 것이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싶지만, 한 편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나의 인생을 바친 상황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오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다시금 환기할 수 있게 해준 따숩님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모았던 파편들과, 그 파편을 열심히 다듬어서 기둥 삼고 내가 사용하고 있어왔는데, 알고보니 그 기둥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라니 놀랍고, 나를 분석하는 게 강박이자 취미라고 말하는 내가 이걸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만큼 등잔 밑이 어둡구나, 역시 여전히 나는 혼자서는 한계가 있구나.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곧 잘 던지는 모습 정말 나도 연습하고 싶다. 그리고 멈추지 말고 공부해야겠구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