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서 관성대로 산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비슷한 문장으로 폴 부르제의 소설 [정오의 악마]에서 나온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는 내가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내 생각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로, 행동의 힘이 크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더라도 그것과 멀어지는 행동을 하게 될 때 더 이상 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삶은 자연스럽게 안 좋은 길이 되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접근해서, 건강만 놓고 볼 때, 운동을 하지 않으며 살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운동하기 어려워지곤 한다. 이뿐 아니라 나도 내가 바라는 삶이 있었지만, 내 행동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있어서 좌절을 겪고 오랜 기간 무력감에 젖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끝내 그 길을 놓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궤도에 나를 올려놓기 위해 발악에 발악을 했고, 지금은 만족스러운 흐름을 타고 지속적인 상향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나에게 있어서 난이도 높은 작업을 함에 있어서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만 뚫어낼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에 있어서 일차적인 최종 단계에 도달하는 의미가 있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마감 기한은 다가오고, 미루다가(물론 내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을 하다가), 더 미룰 수 없겠다 하는 시점이 와서, 조금씩 건드리는 와중에 타격을 입는다. 다른 논문에서 보인 완성도와 현재 시점의 나의 작업물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 닥치면서 배때기에 총을 맞는 듯했다. 다행인 점은 지금 시점에서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이 이것뿐이었다.
그 덕에 이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할 시도를 하기에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오래된 문제였고, 드디어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동안 배워 연습해 왔던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상황에 대해 살폈다. 내 몸 상태를 보아하니 고통을 겪고 있었다. 고통에 대해 충분히 가까이 들여다보기로 한다. 배에 느린 모션으로 총난타(원피스 루피 주먹)를 맞는 듯이 명치 부근부터 바깥으로 욱신거림이 퍼졌다. 스트레스받을 때 나타나는 긴장과 에너지 소모 등이 머리와 어깨 배에서 전반에서 나타났다.
정말 신기하게도 느낌을 어루만지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듯한 생각도 따라왔다. 그러고 나니 좀 더 힘이 생긴 듯했다. 즉각적으로 AI와 대화를 활용했다. 이 상황에 매몰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AI에게 해결책을 받거나 정답을 구한 것이 아니다. 이 상황에 매몰된 이유는 나의 점검해 본 적 없던 자동적 생각이 강하게 무의식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다른 관점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에 AI를 통해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었고, 즉각적으로 그동안 연습했던 인지행동치료스러운 접근을 AI의 지원을 받아 시도했다. 아예 작업을 진전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한 발짝 나아갔다. 작업을 쪼개서 유치원생 수준의 작업 - 목차 작성하고 마치기- 를 기대했고, 초등학생 수준의 작업 - 목차에 소목차 작성 - 까지 했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지만, 기대한 것보다 더 했다는 생각을 갖고 만족하기를 선택했다.
이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잠시 멈춰서 차라리 글을 쓰려고 했다. 쓰려다가 잠이 쏟아져서 잠시 엎드렸는데, 침을 한 바닥 흘리고 깨어났다. 깨운하고 굉장한 낮잠이었다. 아쉽게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찌뿌둥하고 진이 빠진 상태여서 산책을 나갔고 말 그대로 기력이 쇠해서 걸을 힘이 나지 않았다. 벤치에 앉았는데 드러눕고 싶었다. 잠깐 누워서 몸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좀 해주니 회복이 되는 것을 느꼈다.
과거에 같은 상황이었다면, 진작에 회피기동이 발동되어, 무의식적으로 찰나의 순간에 발생한 자동적 생각과 습관적 행동(매우 강한 관성)으로 이미 유튜브나 릴스 같은 것에 빠져들어가서 하루를 날렸을 만한 위기였다. 여건이 마련이 되기도 했고, 스스로도 상황을 다룰 수 있는 지식과 스킬이 충분히 정착되어 있었던 덕에 새로운 행동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기존의 사슬을 끊는 경험을 한 번 쌓은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방법들을 더 디테일하게 얻어내는 중이다. AI의 지원으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역시 인생은 혼자의 힘으로만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다시 체감한다. 이전엔 수도승처럼 굴었던 것에 비하면 이젠 좀 현대인스럽게 살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지금껏 뗄 수 없는 문장이 되었다. 물론 개선을 경험함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은 점차 더 구체적이고 확장되긴 하지만, 만족할만한 지점이 어딘지도 안다.
그래서 나오는 표현이 '일차적'인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내가 원하는 일차적인 모습에 있어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온 것 같다. '돈만 벌면 되겠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직결되는 문제상황이 바로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피기동을 발동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다른 해석과 다른 행동으로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점차 뚫린다면 결국에는 과거의 나에게서 온전한 해방을 누릴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삶을 접근해 왔던 흐름이 일관된 게 보인다. 일차적인 단계에 도달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방향은 계속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을까. 적어도 모양새는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습관을 바꿨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에 대해 관성이 붙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관성은 지속적인 반복에서 생기는 결과물일 뿐이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에너지를 써서 바꿔낸 모습이든, 살던 대로 살든 상관이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