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따기

과거를 철저하게 규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랑비 2026. 8. 5. 09:37

  아도르노의 저서, [성숙을 위한 교육] 1장의 제목인 이 질문은 첫 문단부터 뇌리에 박히는 설명을 들고 나온다. '그 언어 사용에서 과거를 철저하게 규명한다는 것은 과거를 진지한 자세로 대하며 밝은 의식을 가져 과거의 길을 터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대해 결말을 내리려고 하며, 가능하면 과거를 기억 자체로부터 지워버리려고 한다. 부정을 저지른 무리는 모든 것을 잊고 눈감으며 불의를 시급하게 마무리하려는 태도를 가지며 이를 실행한다.'

  여백이 부족하여 줄이고자 사용한 것 같지만, 면주에 적힌 제목은 이 내용을 담은 듯 보인다. '과거를 처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그런 눈으로 봤기 때문에 쉽게 연상된 것이겠지만, 과거를 대하는 태도에서 하수 처리하듯 대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수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방류하는 게 아니라, 처리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오염을 최소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하수조차, 그러한데, 여기서 언급되는 '과거'는 더욱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최근 읽었던 [기억, 서사]에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만행을 지적하며 기억과 서사에 관한 질문을 날카롭게 다룬 것이 연상되었다. 앞의 문장은 마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취하는 행동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겹쳐 보인다. 과거에서 빠르게 잊게 함으로써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기억, 서사]에서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다고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 고통이 절대로 동일하게 공유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더욱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이 책은 몇 달도 더 전에 이미 시도하다가 잠시 멈췄던 책이다. 그 아쉬움이 남았고, 우연히 그 아쉬움이 떠올라 책을 다시 집었는데, 우연이 아니었던 것일까? 이렇게 연관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발견한다. 보다 더 잘 읽히는 순간이다. 나는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이해해 달라 고요하게 외치던 때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조금씩 생기는 여유에서 조금 떼어서, 시선을 밖에도 조금씩 머무르게 하는 중이다. 그럼으로써 타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공감을 시도하는 중이다. 곁에 머무르기. 

  다음 페이지에서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또 그다음 페이지에서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일어난 일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등의 문장들은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내가 했거나 당했거나 했던 기억들이 환기된다. 전쟁의 상처들이 전혀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깨운다. 죄의식을 견디기 어려워 취하는 행동들. 그로 인해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하는 모습은 마치 핵폭탄과 다를 바 없다. 그 여파로써 고통이 수 세대에 걸쳐 흐른다. 

  성급한 결론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는 온전한 형태로 규명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기억, 서사]에서도 언급되듯이 기억이 꺼내질 수는 있어도, 절대 그것이 동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도르노가 언급한 과거라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차원에서 언급된 것이며, [기억, 서사]에서 언급된 기억은 개인이 겪은 것이라는 차이 정도가 있을 뿐, 같은 현상을 말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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