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는 소외가 아닐까. 다만 [실천공동체 CoP]에서도 언급하듯 소외가 무작정 나쁜 의미로만 다뤄질 것은 아니다. [상황학습]에서 주장한 합법적 주변 참여의 개념 안에는 일견 소외로 해석될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하게 연관되는 개념이 동일시와 협상력인데, 소외를 당하는 존재는 소극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일시가 형성된 구성원은 전임 참여로 나아가게 되는 궤적을 그린다. 그런데 그 궤적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소외된 곳에서 출발하여 합법적으로 되는 영역을 창출해 내는 경우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위협 요인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폐쇄성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가 고질적인 지점에 이르게 될 때 지속가능성은 근원적으로 위기에 처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려서 공동체가 해체된다 하더라도, 앞서 그렸던 그림과 같이 실천공동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 해결'적 접근이 살아 있는 한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정신을 해칠 수 없다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그렇다면 더욱 근원적으로 위협 요인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점에서 이 질문은, 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느냐에 대한 질문과 유사해진다고 볼 수 있다. [CoP혁명]에서도 강조하듯이 실천공동체에게 중요한 것은 생동감이다. 또한 실천공동체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취급하는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라 세포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매우 적절하다. 왜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듯하는데, 너무 질문의 크기가 커지므로 쪼개서 작게 볼 필요가 있다. [CoP혁명]에서는 기업에서 다뤄지는 실천공동체에 초점을 두어 설명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이윤창출에 우선순위를 둔다. 마찬가지로 이윤창출로 이어지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식창출에 주목하면서 실천공동체에도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CoP혁명]에서 상세히 다루는 것처럼 비공식적인 모임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회가 급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실천공동체는 자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실천공동체가 지속해야 할 필요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그 '문제 해결' 정신과 같은 유산은 지속되어야 하는 명분이 명백하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기업이 사내에 존재하는 실천공동체에 코디네이터 같은 존재나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느냐에 따라 특정 실천공동체가 활성화되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와 관련 없이도 실천공동체는 활성화되기도 하는데, 세 가지 구성요소인 도메인, 공동체, 실천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기업의 입장 또한 생존을 위한 이윤창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원을 무조건, 무한정으로 지원할 수 없다. 성과를 기대하고 자원을 투입하게 될 때 나타나는 간극들이 위협 요인이 될 수 있겠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회 변화 자체가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위계질서가 명확한 게 당연하던 시기가 있었다. 현재는 오히려 수평적인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수단'에만 머물러 있다면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렇게 위 두 가지(기업의 입장, 사회 변화) 또한 마찬가지로 실천공동체의 생동감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하기 위해 관심을 두어야 할 지점은 실천공동체의 생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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