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공포증

가랑비 2025. 11. 7. 22:42

  공포증은 국제질병분류에 의하면 불안장애의 한 유형으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늘 크게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불안을 느끼고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병적 증상이라고 한다. 병적이라는 표현이 왠지 큰 질병인 것 같아 큰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준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지의 여부로 둔다면 조금 더 활용하기 수월해진다. 공포증의 종류에는 정말 수천수만 가지가 있을 것 같다. 과장을 보태자면,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지 싶다. 그 많은 공포증 중에서 이번에는 조금은 지루한 표현이 된 것 같은 발표 공포증에 대해 짧게 조명해보고자 한다. 

 

  최근 보호한다는 것에 대해 점차 생각을 하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만약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이렇게 해야지! 이런 생각만 있었지 정작 지켜준다는 것에 대한 접근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명백히 다른 지점이 있어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육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마치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 정도를 대하는 수준의 책임감에 그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자녀를 양육하고 독립시키는 등의 작업은 그 이상의 것으로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러다가 한 선배와 우연히 밤 길을 걸으며 편안한 산책을 하다가 입 밖으로 꺼내게 된 표현이 있었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다는 거잖아요?" 웃기게도 태어나서 처음 해 본 말이었다. 이 표현은 이후에 야금야금 내 안에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지켜주는 것'으로 완전히 간단하게 다른 표현으로 하게 되었다. 이 안에는, 나를 보호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에 기존의 내 정의를 해치지도 않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잡아먹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욕구 기반 차원에서 볼 때, 나는 자기 보호, 안전에 대한 욕구가 정말 강한 상태로 지내왔던 것이다. 

  '이해'라는 키워드는 이전까지의 내 인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였다. 그러나 이제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다른 키워드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만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점에 갑자기 하나의 돌멩이가 날아와 퐁 하고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다. 인정? 성취? 성장? 평화? 이런 류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이의 간극에서 한 가지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 있었고, 불쾌하진 않지만 '쓰읍'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불안, 공포, 다시 말해 생존에 대한 관점이었다. 

  아 이제야 많은 것들이 모두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밥 먹는 것도 필요 없다는 표현을 꽤 많이 썼었다. 왜? 죽으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 돈도 필요 없다고 했었다. 죽으면 그만이니까. 물론 나는 회의론자도 아니고 회의감에 휩싸였던 시간은 지극히 적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크다. 다만 생존에 대한 위협만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식욕이 없다거나 많이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밥 먹는 것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우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먹는 것이 곧 생존인 사람도 있었겠다만, 나의 경우에는 나의 존재에 대한 수용, 바로 '이해'였다. 일종의 무의식적으로 설정하게 된 수단인 셈이라고 보인다. 

  다시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고, 관심이 있는 주제임에도 여전히 하기 싫었다. 던질까 하다가도,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결국 발표를 마치고 돌아왔다. 어이가 없을 정도이지만,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보았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불안했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여보자. '나는 지금 목숨을 걸고 하는 게 아니고, 죽지 않는다. 나는 여기 조언을 구하러 왔을 뿐이다.' 발표 직전 심박수가 증가하고 체온이 올라가고 식은땀이 나는 수순을 밟으려던 감각이 살며시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앞선 발표 내용에 꽤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발표 공포증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내가 모종의 이유로 증상이 있음에도 아니라고 거부하던 것을 내려놓고, 맞다고 가정하고 접근을 하는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는 정말 극적이어서 매우 재밌다. 이번 기회에 공포증, 안전이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조명하게 되면서 그 찝-집하던 것을 발견한 것 같아 정말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무언가 눈을 뜬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이제는 조만간 오게 될 나의 변화에 몰입할 순간을 정말 기다리게 된다. 

728x90

'내꺼내 > 글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 문제들에 대한 단일필살법  (0) 2025.11.26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0) 2025.11.08
이해  (0) 2025.11.01
idea  (0) 2025.10.27
결국 내가 하기 싫은 거였다.  (0)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