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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두려움

가랑비 2026. 10. 16. 14:12

  폭력이 0에 수렴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당하고 싶지 않아서 인 것도 있지만, 내가 가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도 있다. 자신이 선이라고 믿는 이가 생각을 살짝 삐끗하여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사건에 관한 두려움이 있다. 겪고 싶지 않고 겪을 필요도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비폭력대화가 폭력을 0에 수렴하도록 돕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매우 선호한다.

  그런 비폭력대화에서도, 보호를 위한 힘의 사용에 대한 언급이 다뤄진다. 파괴가 목적이 아닌 보호를 위한 것.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인다는 접근이라기보다는, 둘 다 살리는 방향으로의 무력 사용이다. 예를 들어서 갈등이 치닫게 된 당사자들을 거리를 떼어두게 한다든지 하는 방식이 있겠다.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이 영역을 이렇게나마 건드려야 하는 이유를 경험했다. 돌이켜 보니 아찔했다. 

  말 그대로 씨름을 한 듯했다.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한 것에 그치긴 했지만, 확실해진 점들이 있다. 나도 상대를 해할 의도가 없었고, 상대도 나를 해할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또한 이런 방법은 정말 최후의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생각들이 더 명료해진 점이 있다. 상대방은 대화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대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라고 더 강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공감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직전까지도 심박수가 높고 몸에 열기가 남아있었는데도 나의 마음 상태는 평온함으로 돌변(?)했다. 그 즉시 대화를, 아니 공감을 하러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답변이 정말 예상 밖이었지만, 오히려 더 명확해졌다. 역시 대화를 원하고 있었던 게 맞다고. 그 즉시 상대의 말을 포용하고, 부탁에 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상황을 종료했다. 

  나는 싸움 자체가 싫었다. 갈등 상황 자체가 두려웠다. 끝나지 않고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았던 걸까? 그래서 도망갔나 보다.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게 맞았다. 들이받았다 하더라도, '대화'는 가능했다. 오해를 풀고, 오해한 점과 실수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보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고 이게 이미 존재하는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고, 들이받아도 괜찮다는 응원을 받았다. 그렇게 튀어나왔던 행동이었던 것 같다(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니 역시 실수했다. 그러나 확신을 얻었다. 힘을 사용하는 것은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어야만 한다는 것. 논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 고통을 유발하는 것의 정체인 채워지지 않은 필요는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더욱 필요하고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의 실수와 실수 이후에 확실해진 이러한 접근을 통해 남아있는 두려움조차 씻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공존한다. 동시에 내 안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여전히 명료하진 않더라도, 끊임없이 구체화해 온 세월이 있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켜 줄 정도의 근거들이 확보되었다. 나의 원하는 모습을 완성할 수 있는 퍼즐들을 모으고 싶다. 두려움은 이제껏 실수를 덜 하도록 도와줬던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이제는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됨으로써 그 두려움은 사라질 수 있다. 

  나는 깨달음의 순간을 좋아한다. 이번 글쓰기를 통해서 지금 튀어나오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나는 달라지는 내 모습을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그림의 퍼즐을 하나 가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퍼즐은 내 몸 안에 녹아있어 잃어버릴 걱정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한 번 찾은 퍼즐은 내게서 떠날 수 없다. 희미하게 찾았다면 온전해지기까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격변하는 나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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