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따기

'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가랑비 2026. 8. 12. 11:18

  대학, 특히 철학과라면 다뤄질 법한 주제가 등장한다. '...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하여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정념(Pathos)이 없는 상태의 생각을 의미하며...', '... 사람들은 수험자가 브레히트(Brecht)의 한 구절로서 "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문장을 격언으로 선택하고 정언명법을 다양한 표현으로 암기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p44).' 진짜 내가 당사자였다면, 이 말을 들으면 눈이 두 번쯤 뒤집히고도 남아서 돌아간 상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도르노는 어떤 일에 대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게 인간이 되는 길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듯하다. 성숙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됨은 곧 성숙과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당 비판의 대상이 되는 수험자들이 정말로 의식적으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며 그런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도르노의 눈에 그렇게 보일 수는 있을 뿐이다. 대신, 이런 해석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게 내 입장이다. 

  문제는 인간됨, 성숙한 모습에 도달하거나, 성숙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아도르노도 마찬가지로 곧바로 지적한다. '수험자가 시험 전반에 걸쳐 노골적으로 괴로워하고 자신이 지성인이어야 한다는 요구에 반감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정신 자체보다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p44).' 이에 더하여 교육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시험과 관련된 오류를 짚는다. 철학이 무엇인가, 그것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한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아도르노는 '철학은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이다(p46).'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앞서 다뤄진 수험자의 모습은 분명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예술이라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그전에 놓인 '자신을 표현한다'는 말에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좀 더 인간됨, 성숙, 혹은 예술 혹은 철학까지도 확장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한다. 내가 글싸기를 하는 것과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공부 아니, 시험이 가진 맹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본다. 

  아도르노는 시험의 목적이 성숙을, 인간됨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이루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험은 출세의 수단이라는 노예의 상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관습을 욱여넣는 것에 그친다. 이로 인해 수험자들은 성숙은 어림도 없고, 알랑방구 뀌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현대 사회의 작태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시험이 잘못한 게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 쉬울 뿐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못이니 없애자!라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대신,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도 존재한다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반영해서 더 나은 선택지를 발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되고 싶어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성숙된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해 블랙박스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728x90

'내꺼내 > 글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육과 사랑 그리고 언어  (0) 2026.08.14
Bildung  (0) 2026.08.13
철학의 정신이란,  (1) 2026.08.11
계몽으로서 과거를 철저하게 규명한다는 것  (0) 2026.08.10
비판과 공감  (0)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