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설령 추락하더라도 괜찮아.

가랑비 2026. 6. 25. 12:52

샤갈의 [이카루스의 추락] 이젠 추락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한 번 욕망에 휩싸여보자. 남의 욕망이 아닌 온전한 내 욕망이라 억울하지는 않을 테니까.

 

  오늘 아침, 헬스장에서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사이클을 하는 중에 보통 티비를 안 켜놓는데, 오늘 화면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 롤랑 가로스 요약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한 선수의 발언에 시선이 머문다. "이 대회를 보며 자랐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는 말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다. 왜인지 판에 박힌 듯한 말로 보여서 이물감을 느끼지만, 다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걸 싫어할 이유는 또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특정 목표를 마치 그동안의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도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이 순간 요 며칠 사이에 있던 아주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한 번에 밀려들어왔다. 

  먼저,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한스 짐머의 F1 ost에 꽂혀서 계속 듣고 있다(1). 뭔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작은 불씨를 꺼내서 지펴주는 듯한 그 느낌이 있어서 지금 내 심리 수준과 마음에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이다. 특히 무언가 향해 에너지를 분출할 때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웨이트를 할 때에도 평상시 보다 무게를 한 단계 더 올리고 시도해 본다든지, 사이클을 탈 때 RPM을 끝까지 올려 본다든지 하게 된다. 며칠 째 사이클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내 허벅지 생각보다 더 튼튼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달려 보고 싶어졌다. 

  다음으로는 다른 분의 이야기를 보고 '나는 왜 저렇게 해볼 생각을 못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 가게 하는 힘이 비록 주변을 놓치게 되는 승부욕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전엔 이런 생각을 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또한 한 친구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연달아 떠오른다. '나는 인정받는다.' 이 문장이 신념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친구의 경우 실제로 상당한 매력의 소유자인데, 상대방의 상황과 니즈를 파악을 잘하면서 상대에게 인정받는 것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뭘 하든지 상상 이상으로 해내는 모습을 봐 왔던 입장에서 본받고 싶었다. 나르시시즘과 헷갈릴 수 있겠지만, 상대를 뭉갠다든가 하는 그런 뉘앙스가 아예 없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신념도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 나의 어린 시절이 한 번 더 회고가 되었다. 내 식구에게 우연히 내 어릴 적 시절에 어땠는지 물어보게 되었는데, 그냥 말이 없었다는 게 끝이었다. 물론 놀 때는 화목하게 재밌게 놀았던 기억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 사이에 다시 그때의 모습이 돌아온 거 같아서 좋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별 거 없는 말이지만, 내 뇌를 다시 헤집어 놓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 모습의 뿌리가 내가 인식하는 것에 기반했을 뿐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다른 각도의 모습이 수용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이제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듯한 감각이었다. 

 

  최근 한 달 정도를 극단적인 생각(자살 같은 거 아님 주의)으로 인해 오락가락했다. 이거 아니면 저거! 하는 상황이 있었다. 하나는 모종의 안타까운 이유로 친구 한 명과의 연락을 끊기로 했고,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자퇴를 고민했다. 이 모습은 기존 나에게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런 생각에 있을 때면 고민 끝에 중도를 찾는 식으로 비껴갔었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두려움이 줄어든 게 영향을 준 건 확실하다. 한편 확고해진 나의 지향, 가치관도 한몫한다. 크게 이 두 가지가 지금 볼 땐 메인이 되는 큰 변화이다. 

  친구와 연락을 끊기로 한 것은 아마 회복하긴 어렵겠지만, 자퇴는 다행히 진짜 접수를 한 게 아니고 혼자 진짜 던질 뻔했던 것에 그쳤기 때문에 여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상황이다. 앞선 일련의 것들이 연달아 촤라락 나열됨과 동시에,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해 나는 왜 신포도를 만들어서 와인(라기보다는 식초인 듯)까지 만들 정도로 숙성시킨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최근에 이미 밝혀낸 것에 답이 있었다(2). 달성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그 목표를 향해 갈 때 수반되는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으며, 설령 버티며 시도했어도 무너지게 될 때, 나의 고생스러운 '노력'이 말 그대로 물거품이 되는 것이 극도로 두려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마인드가 이번에도 여전히 유효했다고 보는 게 낫다. 이 생각은 무서울 정도로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은 이젠 잘 안다...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는 지금 내게 비폭력대화와 함께 굉장히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가치가 크기에 처음엔 한 번에 읽어버리려고 했지만, 실천의 비중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하루에 한 장씩 읽고 있다. 이제 12장을 읽던 중, '실천 계획을 수행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 체념상태로부터 무언가 할 수 있는 능동적 해결책을 발견하는 것으로 전환됨을 의미합니다.'라는 문장을 만나게 되었고, 나의 현재 상황에서 내가 느끼던 것을 또 문장으로 이 책에서 만난 듯했다. 더욱 명료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례로써, 여러 가지가 쌓이고 있다. 활쏘기를 하며 초몰기를 했던 직후 3일간 내 안에 뼛속 깊은 패배주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몰기의 경험을 직접 해낸 것이 '나도 할 수 있구나.',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준 것이다. 또한 현재 나의 하루, '건강한 하루'를 6개월째 지내며 나를 재구성하고 있었고, 특히 웨이트(영양가 있는 식단 포함)와 책 읽기와 글 쓰기가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힘을 준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자퇴를 잠시 결심한 이유는 의외로 열정(친구와 연락을 끊기로 한 것도 내막은 비슷한 원리이다.)에 의한 것이다. 비폭력대화에 가치를 더욱 절실히 체감한 순간, 이걸 이전처럼 흐느적대며 하고 싶지 않아 졌던 것이다. 그에 비해 연구라는 것에 대한 가치가 내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체감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6개월을 투자해 볼 만한 가치를 다시 떠올린 것이다. 앞서 쓴 글에서처럼 '그냥'으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3). 물론, 내가 지금 '건강한 하루'를 위해 책 읽기와 글 쓰기를 할 수 있는 장소에 오는 것이 익숙해졌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우니 희망이 생긴 게 큰 몫을 차지한다. 웨이트를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처럼, 더 이상 감정과 사고를 멈추고 '그냥'이라는 답으로 나갔던 것과 같이 논문 쓰기에 똑같이 적용해 보고 싶어진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YhX_Woa3kVA

지금 무언가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그걸 위해 고통을 수반하는 훈련을 하려고 하는 나에게 딱 필요한 음악

(2)

https://garantbe.tistory.com/507

 

배트맨 비긴즈(2005) 감상 기록

두려움을 다룬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브루스 웨인은 어릴 적 집 근처에서 노는데, 부근에 있는 폐쇄했던 우물 위에 올라섰다가 나무가 무너져서 떨어지고 마는데, 그 옆에 뚫려 있던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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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ttps://garantbe.tistory.com/517

 

그냥

유영만 교수님은 레그 프레스를 500kg 이상을 한다. 처음엔 몇 kg에서 시작했는지 궁금했는데, 300kg 정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뭐, 사람마다 타고나는 게 분명히 있으니까 하면서 비교하지는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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