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가치 자체와 가치에 대한 논의의 구분을 다루며 주제를 시작한다. 가치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가치를 대신할 수 없으며, 학자는 언어나 매개수단으로 표현을 하는 역할이지, 실제 가치 자체에까지 확장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선을 긋는다. 여기에서 단지 가치론이 있다고 해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가치론을 얘기할 때 가치를 실현하지 못함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가치론과 가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실망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론은 가치의 실현에 한몫을 차지하는데, 실행으로 연결되지 못하더라도 그 가치를 인식의 수준에서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뭔가 충돌된다고 느끼는 지점이 생긴 것은, 이전에 상구교육과 하화교육을 통해 다뤄진 지점 중에서 교육자의 자격으로써 본인이 해당 품위의 소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접할 당시에도 들었던 의문은, 실제 품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하화할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관존 이강진'이라는 무협 장르 작품에서 등장한 이강진의 스승인 '곽노'가 있다.
이 캐릭터는 실제 무공은 별로지만, 천살성(사람 죽일 성질)이라는 특징을 가진 이강진을 교화(?)시켜 사회에 이로운 역할을 맡아 살게 하는 인물이다. 곽노의 품위로써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람 보는 눈과 그것을 사회에 잘 결합시키는 능력에 있다. 한편, 무공은 아주 쉣이었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엉터리였다. 그런데 이강진은 타고난 바가 많아서 그걸 또 찰떡같이 알아듣고 정확하게 수행해 내는 소위 천재, 하늘이 내린 능력자였다. 정리하면, 곽노는 이미 갖춘 품위를 활용해 그 필요가 있는 제자를 만나 하화교육을 해냈다. 그러나 자신에게 갖춰져있지 않은 품위를 단순히 말로만 복사하여 전달했을 뿐임에도 해내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짚는 부분은 후자에 있다. 곽노의 경우 자신은 수행해 낼 능력이 없음에도 다른 곳에서 주워 온 내용으로 이강진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여기서 전제 조건은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유효한, 이미 증명이 된 무공이었다는 점이 있다. 그런 전제 하에, 예를 들면, 스승의 역할로써 있음에도 자신도 수행의 차원에서는 직접적으로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짬바를 통해 볼 수 있는 지점에는 도달했다고 친다면, 말로써 전달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경우에 물론,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은 얼마든지 인정하나,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해 보고 싶었다. 이게 앞서 언급된 가치론과 가치의 차이에 대한 내용에서 다뤄진 부분과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이미 한번 의문점이 생긴 지점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점이 생기니 일단 기록해 두는 차원에서라도 글을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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