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내/글싸기

이너보이스

가랑비 2026. 1. 17. 13:22

  내면의 심판자, 내면의 비판자, 내면의 목소리 다방면에서 약간씩 다른 용어로 활용되고 있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개념의 장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이 개념을 인식한다면 나를 좀 더 잘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면의 비판자 같은 경우에는 안 좋은 의미로 쓰이는데, 스스로를 계속해서 다그치게 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쳐서 휴식을 달라고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 외침은 듣지 못하게 된다면 끝이 좋기 어려울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개념을 이해하고 인식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대할 때 굉장히 엄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일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경쟁, 억압 등에 익숙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게 자연히 이너보이스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례와 달리 이 지점에서 고민할만한 것은 본인이 살아가는 과정에 해당 이너보이스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면, 문제 될 게 없겠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정 요소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요소에 있어서 적응이 완성된 상태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너보이스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외부 자원의 투입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뽑아 볼 수 있겠다. 

  흔히 스트레스로 여겨지는 것을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특정 기준점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보기에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때 다그쳐서 그 기준을 채우도록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준이 없는 상태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형태도 있겠다. 물론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강박의 형태로 볼 수도 있고, 본인의 선택으로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스트레스로만 볼 수는 없겠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매우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내면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으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도, 이 내면의 목소리가 어떤 상황에 나타나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볼 수 있기만 해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확보할 수 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학습되었던 내면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나아가도록 도움이 되는 내면의 목소리로 장착할 수 있게 된다면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