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라는 것은 강력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틀이 된다. 그런데 이 틀 또한,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작동한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면,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신념이 깨지도록 가만 두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타인들이 볼 때 선하다는 평을 듣는 방향이 있고, 아닌 방향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선하다는 개념은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하다는 기준도 사실 저마다 제각각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 또한 제 입맛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나는 앞서 매복 신념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었던 신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다루게 될 사례가 바로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이다. 모든 나의 글싸기가 그렇듯이 나의 경험에서 발견한 지점인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충분한 고민 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최근 한국 한 지역에 총기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있었다. 총기를 사용하여 살해한 사람의 인터뷰가 뉴스에 나왔다(1).
'나는 선한 사람이다.'
이 인터뷰를 접하고 생각했다. 바로 이거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라 다루기가 매우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처럼 명확한 사례가 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에 대한 위험의 잠재성에 대해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 신념을 가진 사람이 위험해지는 지점은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선한 사람을 공격한다'는 문장을 보자. 공격한 주체는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공격한 주체는 '악인'이 되고 공격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한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위험성에 대해 매우 희미하게 있었긴 하다만 고민해야 할 지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싸움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화를 내고 이런 모습들이 싸움을 유발한다고 느낄 때 고통스러웠다. 이 간극을 해결하고 싶었다. 이 간극을 해결하는 데에는 수많은 장치들과 개념들이 적용되어 이제 해결하게 되었다. 화룡점정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선한 사람의 신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 위험성을 깨닫고 일단 버려보자 시도했다. 한 때 나는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보는 편이었고, 선한 사람이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듣게 될 때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분명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때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작동하고 있던 것이다. 이 영향이 있었는지, 나에게는 어떠한 악의란 없다고 보면 된다. 정말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를 품고 먼저 공격해 본 적은 없었다. 최근 더욱 폭넓은 관계를 맺으면서 겨우 그런 영역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언행에는 충분히 오해(내 입장에서나 오해였을 수도 있다.)를 살만 한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자식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법한 상황, 혹은 반복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하는 등의 상황들을 반복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 내 입장에서는 악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어디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웃긴 건 이것에 대해 지적하게 될 때 상처를 받고 억울해했다. 그러나 마냥 억울해하기만 하는 타입은 또 아니다. 이에 대해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면 문제는 덜할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생각과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버무려지고, 상대방이 나를 지적하는 경우 혹은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공격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해소하지 못한 감정은 점차 턱끝까지 차오른다. 결국 사소한 터치 하나로 역치를 넘기게 되면서 역정을 내게 된다. 이게 치달으니 진심으로 공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이렇게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면서 해결의 희망을 보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반격의 정당성, 반격하게 되는 흐름, 그리고 그 뿌리에는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일단 한 번 시도해 본다.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버려보기로.
지겹더라도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자, 그렇다고 해서 악인이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습관 어디 안 가는 것도 있기도 하고, 내 의지가 그렇게 두지 않는다. 이렇게 풀어보고자 한다. '선한 사람'은 고정 틀이다. 그러나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수많은 내면을 품는 존재다. 고정 틀이라는 것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것들이 더 관계를 연결하고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고, 더 나를 위한, 너를 위한, 우리를 위한 방향인지를 고민할 뿐이다.
(1)
https://youtu.be/7wBGRjqBtgg?si=dfEb_kVjRye6xtps&t=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