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이성
일기를 쓰라고 할 때 사건들의 나열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나의 느낀 점과 생각을 위주로 쓰라고 한다. 일기는 나에 대해서 쓰는 것이지, 그 이외의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중에서 사람, 그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 하면 마음과 생각이다.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아는 데에도 이 두 가지의 중요성은 똑같이 적용된다.
지구촌, 글로벌 시대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던 시기가 있었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게 멋져 보이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트렌드로 외향적인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같다. 글로벌하게 살고 인싸로 지냈던 적은 딱히 없지만, 다른 무언가가 막연하지만 조금씩 바꾸기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자연이나 내면의 가치에 더 신경이 가고 있었다. 물론 한 때 나도 다른 사람들 따라 글로벌하게 다니거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깜냥이 부족했을까 그러지는 못했다. 트렌드를 역행하는 본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도 좀 살 방법이 없을까 하며 다른 방향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갑자기 나타나 내 온 신경을 가져가는 의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잊을만하면 나타나곤 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 건데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도 궁금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나에게 생기는 호기심들의 종착지는 대부분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성에 집중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 덕에 많은 부분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꽤 많이 얻었다. 그런데 항상 뭔가 빠져있는 기분은 떨쳐지지 않았다. 최근 감정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 아마 뭔가 허전한 이유가 감정이었던 것 같다. 대화의 꽃인 '공감'에 대한 기술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 뒤로 감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사람과 관련된 많은 고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만, 방향이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에 집중되어있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기를 바라기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나에게 공감하는 것을 시도하게 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게 진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의 열쇠인 것 같다.
머리로는 이상을 그려도 계속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머리로는 산 정상에 올라있는데 몸이 입구 컷 당해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내가 경험한 일에 대한 내 실제 반응이 이상과 달리 너무 유치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불 킥 각 잡히는 일을 많이 경험했다는 말이다. 근데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차분히 내성을 기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노력이었다. 일종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있을 때, 내 반응은 곧 어떤 마음이 멋대로 작동해서 튀어나오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이성만으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음이 넘어져 다치고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따라오다가 비참하게 쓰러져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장이 멈춰있는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것은 이 마음을 부활시키는 것은 특수한 전문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딱 하나, '나'만 있어도 될 수 있다. 정 안된다면 딱 한 사람만이라도 도와주면 된다. 속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렇게 딱 한 사람만 쓰러져있는 마음을 봐주고, 살펴준다면 생각지도 못하게 빨리 낫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아직 이성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한 기간에 비하자면 감정을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한계가 있고, 또 어떤 것이 사람을 이루는 요소에 더 있을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자. 그리고 어떤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마음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그러면 꽤 파란만장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대신 좋은 일이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